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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에게 듣는 한국 유소년 축구

2023-03-08 11:09:27 2,336


 

현대 유소년 축구는 개인의 발전이 성적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곳곳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더 나아가야 하지만,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올해 부임한 이임생 대한축구협회(KFA) 기술발전위원장과 함께 유소년 축구의 현재와 발전방향을 키워드로 짚어봤다.

 

기술발전위원장은 유소년 육성과 현장 지도자 교육, 그리고 연령별 대표팀 운영과 발전까지 전반적인 유소년 축구의 토양을 다지는 일을 한다. 최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미하엘 뮐러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은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은 한국 유소년 축구의 구조와 철학을 확립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 지도자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이임생 위원장은 자신이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업무에 그대로 녹이고 있다. 국제적인 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우리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 중이다. 요즘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다는 이임생 위원장을 ‘ONSIDE’가 만났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ONSIDE‘와 마주 앉은 이 위원장은 현재 한국 유소년 축구의 트렌드와 이슈들을 짚어보고 KFA 차원에서 추구하는 발전 방향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트렌드 변화 #8인제 축구 #기술발전

유소년 축구 발전은 ‘백년대계(百年大計)’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기간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유소년 축구의 트렌드를 바꾸려는 노력은 사실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다. 성적 중심의 문화에서 개인 기량의 발전을 중요시하는 문화로 바뀐 것도 장기간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유소년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초등 8인제 축구다. 이임생 위원장은 8인제 축구가 선수의 기량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장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코칭 방법에 유연함을 가져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소년 축구의 트렌드는 과거와 다르게 어떻게 변화했나?

현장에서 활동 중인 지도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 유소년 축구가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2019년 국내 모든 초등학교 축구경기에 8인제가 도입되면서 선수들의 기량도 발전했다. 8인제 축구는 많은 볼터치, 슈팅 기회, 컴비네이션 플레이, 공수전환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11인제보다 더 활발히 할 수 있다. 체력적으로도 고강도고, 선수 교체도 수시로 할 수 있다. 8인제가 유소년 발전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8인제 축구는 지도자의 코칭 방법도 바꿨다.

맞다. 특히 지도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초등 8인제 축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KFA는 현장 지도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현장 지도자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11인제와는 다른 코칭 방법 때문에) 지도자 강습회에서도 두 가지를 당부하고 있다.

 

하나는 연역법이다. 연역법은 훈련을 하면서 지도자의 경험과 지식을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지도법이다. 그 다음에는 귀납법이 있는데, 이는 실수를 통해서 선수 스스로가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두 가지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KFA에서는 지도자 분들에게 적어도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는 선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코칭 방법의 유연함을 부탁드리고 있다. 실전에서 실수를 해도 선수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다행히 다수의 지도자들이 변화를 잘 따라주고 있다.

 

기술 발전의 비중이 높아지는 지금 초등 지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2세 이하 선수들은 당장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유망주가 연령별 대표-프로선수-대표선수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기다려주는 문화가 유소년 선수들의 기술적인 발전을 이끌어낼 것이다.

 

기술 발전의 필요성은 높아졌지만, 요즘 어린 선수들의 Winning mentality(위닝 멘탈리티)가 다소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지도자 강습회에서도 계속 공유하고 있던 부분이다. 유소년 단계에서는 기술적인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연령별 대표팀의 발전, 나아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기술과 어우러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Proactive play(능동적인 플레이), Winning mentality(1대1에서의 승리, 볼을 소유하려는 의지 등), Commitment(동료를 위한 헌신적인 플레이)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요소들이 기술과 함께 갖춰져야 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지도자분들도 훈련 과정에서 이 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카타르월드컵 #오현규

이임생 기술위원장은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나타난 세계 축구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다. 무조건 많이 뛰는 축구보다는 효율적인 플레이가 돋보였다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 유소년 축구에 적용할 만한 시사점도 있다. 이 위원장은 세계 축구 흐름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분명히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나타난 세계 축구 흐름과 우리 유소년 축구에 적용할 만한 시사점은?

먼저 볼 소유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페인의 ‘티키타카(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받는 전술)’처럼 그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볼 소유를 많이 가져가는 전술이 통용됐는데 과연 이것이 현대축구에서도 계속 가져가야 할 전술일까? 그걸 고민해봐야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볼 소유를 높게 가져가거나 많은 활동량을 지닌 팀들은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많이 뛰어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다면 효과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경우 카운터 프레싱(Counter pressing, 볼을 뺏기자마자 즉각적으로 압박하는 것)과 푸싱온(Pushing on, 상대가 동료에게 볼을 주려는 것을 미리 예측해 공간과 사람을 압박하는 것)이뛰어났다. 또한 빠른 카운터 어택(Counter attack)이나 개인적인 볼 소유 능력은 우리 연령별 대표팀도 고려해볼 만 하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중앙보다 측면 플레이의 비중이 높아지기도 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나온 득점 장면을 살펴보면 주로 측면 크로스가 골로 연결된 경우가 많았다. 갈수록 중앙을 콤팩트하게 쓰는 추세이기 때문에 공격수가 중앙으로 침투한 뒤 골까지 만들어내는 플레이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측면 공격수의 1대1 플레이, 풀백이나 사이드백이 공격 가담을 해서 상대의 측면을 공략하는 장면이 이번 월드컵에서 자주 관찰됐다. 결국 앞으로의 현대축구는 측면에서 1대1 능력이 좋은 팀들이 많은 기회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유소년 선수들과 연령별 대표팀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피지컬, 투쟁심을 모두 갖춘 어린 선수들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셀틱으로 이적한 오현규가 대표적인데?

오현규는 과거 수원삼성 감독 시절 내가 직접 프로에 데뷔시켰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유형의 스트라이커였다. 오현규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도 가능하고, Hold up play(상대 수비수를 뒤에 두고 볼소유나 연계 플레이를 이어가는 것)도 할 수 있다. 

 

또한 Commitment(동료를 위한 헌신적인 플레이)와 Winning mentality(1대1에서의 승리, 볼을 소유하려는 의지 등)도 다른 선수에 비해서 강했기에 발전 가능성이 컸다.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한국 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지도자 교육 #축구과학 #조언

우리 유소년 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임생 위원장은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주도하는 주체가 바로 현장 지도자인 만큼 이들의 의견을 경청해 지도자 교육의 질을 점차 높여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생각의 변화도 필요하다. 유소년 선수들의 실수, 시행착오를 보듬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교육자의 마인드도 있어야 한다. 이임생 위원장은 지도자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기다리고 믿어주는 ‘서포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소년 지도자 교육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계획인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강사 생활을 한 미하엘 뮐러 전 기술발전위원장 덕분에 우리 지도자 강습회도 체계가 잘 잡혔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뮐러 전 위원장이 해왔던 일들을 잘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지도자 강사들과 함께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자 강습회는 이미 유럽식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조금씩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지도자들이 강습회에 참석하면 다른 관점에서 축구를 보고 격의 없이 토론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지도자 강사라고 해서 축구를 100%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축구 선진국에서 나온 정보들을 빨리 수집해 우리 지도자들에게 전달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려고 한다. 축구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서로 존중하면서 나누고 강사와 지도자가 함께 공부하면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유소년 레벨에서 축구 과학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데이터는 굉장히 중요하다. 유소년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 과학을 도입하면 우리 팀, 상대 팀 분석뿐만 아니라 개인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얻을 수 있다. 이 데이터에 따라 훈련 구성 방법이나 선수 발전 방안 등이 정립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유소년 팀에서 축구 과학을 도입하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다.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유소년 팀에서는 일시적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쌓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앞으로 KFA가 유소년 축구 과학 도입을 위해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기술발전위원장으로서 우리 유소년 축구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12세 이하 선수들의 경우 2019년 11인제 축구에서 8인제 축구로 전환하면서 현장에 많은 고충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고충이 있음에도) 8인제를 하는 이유는 결국 선수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발전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직 일부 지도자, 학부모들께서는 선수가 하루빨리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12세 이하 어린 선수들은 평가보다는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할 수 있고, 실수도 할 수 있다. 이 때 다그치고 혼내는 것보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텝 바이 스텝’이어야 경쟁력을 갖춘 선수를 육성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선수가 뛰어난 실력을 보일 수는 없고, 그렇게 되라고 다그치는 것도 선수에게 굉장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뒤에서 ‘서포터’가 된 기분으로 기다려주는 것, 그러한 마인드를 당부하고 싶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2월호 ‘INTERVIEW 1’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2월호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 인터뷰 영상 보기(클릭)
 

글=안기희

사진=이연수,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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