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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유망주 35] 권집' 시련 딛고 일어선 차세대 중원 사령관

2006-08-28 00:00:00 3,655

전북 미드필드의 중심으로 부활한 권집 ⓒ스포탈코리아 배진경



2003년 U-20 세계선수권을 통해 차세대 한국축구의 간판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 받았던 젊은 유망주들이 여럿 있었다.

최성국(울산)' 정조국(서울)' 김동현(브라가)' 김영광(전남)을 필두로 이종민(울산)' 조원희(수원)' 이호(상트페테르부르크)' 김치곤(서울) 등이 두각을 나타냈고' 빠른 시간 안에 이들의 시간이 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와 관심 때문일까.
2003년 세계선수권 8강의 주역들은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 속에 서서히 팬들의 관심권 밖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스포트라이트는 오히려 이들에게 독이 되었고' 그 독을 제거하고 다시 부활하는 데는 만만찮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기대주들의 잇따른 귀환 속에서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권집(전북)의 부활이었다.
동북중과 동북고 재학 시절 이미 초대형 미드필더로 각광받았던 권집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감각적인 패싱과 공수조율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권집은 호쾌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허물어뜨리는 형태의 미드필더는 아니다. 그러나 침착하고 영리하게 경기를 운영할 줄 알고' 마치 경기장 전체를 꿰뚫고 있는 듯한 시야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볼을 공급해주는 센스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마치 90년대 바르셀로나의 지휘관 역할을 수행했던 호셉 과르디올라(스페인)' 혹은 90년대 중후반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드를 책임졌던 페르난도 레돈도(아르헨티나)의 플레이가 연상된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들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그 차이가 크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과르디올라나 레돈도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 권집에게서도 풍겨 나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즉' 팀의 전체적인 흐름을 컨트롤하며 미드필드 후방에서 세밀하게 공격 작업을 해나가는 ‘미드필드의 사령관’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그 누구보다 크다는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권집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동북고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으로 떠나다.

동북고 시절 U-16 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권집은 졸업과 동시에 독일 FC 쾰른행을 선택했다. 당시 안양(현 서울)을 비롯한 프로팀들과 고려대 등의 적극적인 구애를 뒤로 한 채 유럽무대에 대한 도전에 나선 것.

그러나 독일 쾰른에서의 생활에 대해 권집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기량을 발전시켜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지만' 권집이 머물렀던 쾰른 U-19팀과 U-23팀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좀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경험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고' 제 자신이 발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그 때는 대충 운동을 해도 별 문제가 없고 그랬기 때문에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1군팀에 합류하고 싶었어요.”

U-19팀과 팀의 2군격인 U-23팀을 거친 권집은 마지막 단계인 1군팀과의 계약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권집 측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계약조건과 쾰른에서 제시하는 계약조건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 주요인이었다.

“돈 문제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으면 그냥 계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럴 수만도 없는 거잖아요. 물론 제 실력이 좋았다면야 그 쪽에서 어떻게든 계약을 하려고 했겠지만 말이죠.(웃음)”

그 시점에서 권집은 당시 수원 감독이었던 김호 감독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결국 독일에서 기량의 향상을 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권집은 국내로의 복귀를 결정했다. 그 시점이 2003년 7월' 독일로 떠난 지 1년 6개월여 만이었다.

“당시 김호 감독님이 외국인 선수 문제 때문에 독일에 자주 오셨어요. 그러면서 저와도 만났는데' 수원에 와서 도와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 직접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 전에도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저 역시 독일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원행을 결정했죠. 거기서 더 성장해서 언젠가 다시 유럽을 밟겠다는 각오였죠.”

수원의 영건으로 자리 잡다.

2003시즌 후반기부터 수원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 권집은 단번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김호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권집은 김두현' 가비 등과 함께 중앙 미드필드에서 콤비를 이루며 특유의 섬세한 패싱게임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권집과 김두현을 비롯해 조병국' 조성환' 이종민' 곽희주' 고창현' 남궁웅' 박주성 등의 젊은 피들은 ‘김호의 아이들’이라는 별칭과 함께 수원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들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수원에서의 영광도 잠시. 2004시즌을 맞이한 권집은 김호 감독에서 차범근 감독으로 바뀐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단 3경기만을 출장하는 등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얼마 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파주 NFC에 갔었잖아요. 거기서 식사를 하는데' 두현이 형이랑 병국이 형' 성환이 형과 같이 앉아서 먹었거든요. 밥 먹으면서 당시 멤버들을 꼽아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죠. 우리가 2-3년만 더 수원에 같이 있었으면 한번 크게 일을 냈을 것 같다라고...(웃음)”




인터뷰 중인 권집 ⓒ스포탈코리아 배진경



시련의 시작' 그리고 떠돌이 생활

어떻게 보면 항상 그를 아껴줬던 김호 감독의 퇴진 뿐 아니라 권집 본인의 마음이 나태해졌던 것도 2004년 이후 권집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여기에 K리그에 데뷔하자마자 수원이라는 거대한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권집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들어서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적응기간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1군 무대에 투입됐고' 거기서도 제 몫을 해냈다. 그리고 이런 순탄한 행보는 권집에게 오히려 독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그 무렵에는 ‘프로가 이렇게 쉬운 거구나’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이 나태해지고' 자만심도 약간 있었어요. 그런 게 결국 문제점이었죠.”

“축구를 하면서 벤치에 앉아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벤치에도 많이 앉아보고...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순간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랬어요.”

결국 2004시즌 중에 권집은 타팀으로의 이적을 꾀하게 된다.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권집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던 여러 팀들이 쟁탈전에 뛰어들었고' 그 중 전북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당시 전북 사령탑이었던 조윤환 감독은 이전부터 권집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패싱축구에 권집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수원과 전북 양 구단의 협상은 순조로웠고' 전북으로의 이적이 99% 확정되었던 상황. 그러나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하며 이적건은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도장까지 찍었는데' 없었던 일이 됐어요. 어이가 없었죠. 자세한 이유는 여기서 밝히기 어렵지만 전북 이적이 취소되면서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어요. 이팀 저팀 떠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전북으로 오게 됐지만' 그 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쉽죠.”

수원에서 부산' 부산에서 전남' 그리고 다시 전북으로...
몇 개월 사이에 3번의 이적을 경험한 권집은 당연히 제 컨디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팀에 적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감안할 때 22세의 젊은 선수가 1년도 안되는 시간에 이렇게 많은 이적을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이었다.

“전북으로의 이적건이 무산된 후에 정말 짧은 기간에 여러 팀을 옮겼죠.(웃음) 힘들어서 눈물 흘린 적도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해요. 감독님들에게 제가 맞춰갔어야 하는데' 감독님들이 저에게 맞춰주길 원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노력도 많이 부족했고요.”




전북에서의 권집 ⓒ스포탈코리아 배진경



전북에서 부활의 날개를 펼치다.

2005시즌이 시작되고 얼마 후 권집은 우여곡절 끝에 남궁도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전북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러나 전북에서의 생활도 처음부터 장밋빛은 아니었다.

애초에 공수조율과 패싱력이 뛰어난 앵커맨 스타일의 미드필더였던 권집은 다소 소극적인 성격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했었고' 이것은 활발한 움직임과 투쟁심' 수비력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에게 아쉬움으로 다가오곤 했었다. 최강희 감독 역시 같은 부분에 대해 큰 아쉬움을 나타냈고' 권집이 전북에서 자리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 앞두고 열린 동계훈련에도 가지 않았어요. 이적할 생각도 있었고' 최 감독님께서도 필요없다고 다른 팀 가라는 말씀도 하고 그러셨죠.(웃음) 등번호도 맨 마지막 번호인 43번을 받았고요.”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다른 팀으로 옮긴다는 것은 권집 본인에게는 패배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떻게든 전북에서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리고 권집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역시 최강희 감독이 요구하는 부분을 갖춰나가는 것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권집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수비에도 많은 신경을 써줄 것을 요구했었다.

“제가 공격만 하려고 했지 수비를 잘 할줄 몰랐어요. 제가 아무리 공격을 잘해도 감독님이 원하는 선수가 아니었으니 인정을 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우선 수비를 할 줄 아는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당구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잘 때도 천장에 당구대와 볼이 어른거린다고 하잖아요. 한동안은 잠자리에 누워도 머리에서는 수비하고 압박하는 장면들이 머리 위를 왔다 갔다 했어요.(웃음) 그러면서 수비가 조금씩 되더라고요. 감독님도 지금은 수비력에 80점 정도 줄 수 있다고 하시면서 칭찬하셨어요.(웃음)”

“수비하는 것을 터득하니까 수비하는 게 더 재미있고 편해요.(웃음) 제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수비와 공격의 비율을 8:2 정도로 보고 있어요.”

“사실 제가 체력훈련 같은 것을 해보면 체력이 좋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운동장에서 제대로 써먹지를 않았어요. 지금은 적극적으로 수비하다보니까 모든 플레이가 적극적으로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체력이 100이라면 경기장에서 30-40 정도밖에 못 쓴 것 같은데' 지금은 70 이상 쓸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최강희 감독도 이제는 확실히 권집을 신뢰하고 팀의 중심 미드필더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우젠컵을 통해 권집이 달라졌음을 느낀 최 감독은 후기리그에서도 여전히 그를 중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포항과의 후기리그 개막전에서 권집은 멋진 왼발 프리킥으로 최진철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날카로운 감각을 뽐내고 있다.

“집이는 지구력이 무척 좋은 선수이다. 또한 한국 선수들 중에 볼을 소유할 줄 알고' 패싱력이 뛰어난 선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런 부분에서 뛰어나다. 왼발이 워낙 좋아 중거리슛이나 프리킥 능력도 뛰어나다. 다만 성격이 소극적인 것이 아쉬웠다. 전진패스나 스루패스보다는 횡패스나 전환패스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본인 스스로가 그런 약점을 잘 알고 보완했기 때문에 잘해주고 있다.” - 최강희 감독

“많이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하니까 플레이도 쉬워지고' 경기력도 좋아졌죠. 감독님도 최근에는 저를 많이 인정해주시니까 예전처럼 축구가 즐거워지고' 경기가 기다려지고 그래요.(웃음)”




시련을 딛고 일어선 권집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첫 대표 발탁' 생각하는 축구를 주문받다.

전북에서의 상승세는 핌 베어벡 한국대표팀 감독의 레이다망에도 포착됐다.
베어벡 감독은 장기적으로는 2010년 월드컵을 대비한'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12월 아시안게임대표팀(U-23) 구성을 위한 ‘젊은 피’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권집으로서는 2004년 올림픽대표팀 이후 2년여 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것이었고' 2003 U-20 대표팀 시절과 2004 올림픽대표팀 시절의 동료들과 오랜만에 함께 훈련하는 셈이었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몇 년 사이에 애들이 많이 성장했더라고요. 연락이야 하고 지냈지만' 대표팀 훈련에서 그렇게 보게 되니까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수원 시절 함께 했던 두현이 형이나 병국이 형' 성환이 형도 오랜만에 봤고요.”

“대표팀은 처음이라 긴장도 됐어요. 그렇지만 선수들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내가 부족한 점이나 다른 선수들보다 나은 점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죠. 처음이라는 것이 긴장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편안하게 훈련할 수 있기도 했어요.”

대표팀에서의 훈련 기간 동안 베어벡 감독은 선수 모두와 개인 면담을 하며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했다고 한다. 권집 역시 베어벡 감독과의 면담을 했고' 인상적인 기억이었다고 밝힌다.

“일단 제가 짧은 시간이지만 느낀 것은 베어벡 감독님이 생각하는 축구를 많이 주문하신다는 거였어요. 무조건 많이 뛰려고도 하지 말고' 위치적으로 잘 서서 힘들이지 않고 머리 쓰면서 축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어요. 아직 자세히는 모르지만 위치선정 등에 대한 세밀한 지적이 인상적이었죠.”

“개인 면담에서는 자신감을 많이 강조하셨어요. 저에게 나이도 어리고' 신체조건과 기술도 좋고' 왼발도 잘 쓴다고 칭찬하시면서 앞으로 지켜볼 테니까 팀에 가서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있을 거라 말씀하셨어요. 다만 대표팀에 처음 와서 그런지 적극성이나 활발한 움직임이 조금 떨어진다는 지적도 하셨고요.”

결국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에 참가하는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권집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아직 좀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

“지금 당장에는 대표팀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어요. 팀에서 잘하고 있으면 불러주겠지라는 생각이에요. 들어가면 좋지만' 꼭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단은 편하게 전북을 위해 축구를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김두현을 벤치마킹 모델로

이전 수원에 있을 때에도 권집은 김두현(현 성남)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곤 했다.
공을 찰 줄 아는 선수이기 때문에 같이 뛰기가 편하다는 것과 축구 외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선배라는 것이 권집의 설명. 실제로 2003년 권집은 김두현과 호흡을 맞추며 좋은 콤비를 이루기도 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권집은 국내 미드필더 중에는 김두현을 가장 배울 점이 많은 선수로 꼽는다.

“현재 시점에서 개인적인 목표는 두현이 형과 같은 선수가 되는 거예요. 수원에서 함께 뛰었을 때부터 두현이 형의 플레이를 좋아했어요. 아기자기한 면도 있고' 또 두현이 형이 수비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비도 많이 해요.”

“무엇보다 그 형에게서 배울 점은 운동할 때 단 하나의 행동도 대충하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정석대로 하려고 하고' 쉬는 날에도 항상 산에 가는 등 자기 관리를 해요. 평소에도 일부러 몸에 좋은 것을 찾아서 먹기도 하고...플레이도 그렇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형이죠.”

전북의 축구를 기대하라.

최근의 권집은 매우 밝아졌다. 시련기에 느껴졌던 어두운 그림자는 말끔히 사라졌고' 인터뷰 내내 미소와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경기날이 기다려진다는 그의 말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권집은 전북축구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아직 완전히 제 궤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최강희 감독의 축구가 젊은 선수들과 완전히 융화될 시점이 되면 정말 강력한 팀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리 팀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은데'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선수 면면을 보면 좋은 선수들이 많고' 조직적인 면에서는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봐요. 또 선수들 모두가 최 감독님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하고 따르려고 하고 있어요.”

“저 역시도 최 감독님 밑에서 초반에 고생하기도 했지만' 감독님 덕분에 성장했고요. 팀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이 더 성장할 내년쯤 되면 정말 좋은 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올해도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모두 우승이 목표에요. 부상 선수만 없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하루하루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고요. 전북에서 운동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여기서 오랜 기간 뛰고 싶어요.”


인터뷰=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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