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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한국 여자축구, 어디에 와있나

등록일 : 2017.08.16 조회수 : 3116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첫 출범한지 27년, 지금의 한국 여자축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첫 출범한 1990년으로부터 27년이 흐른 지금, 한국 여자축구는 어디에 와있을까? 여러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관심은 잠깐뿐이다. 여자축구는 여전히 열악한 저변의 비인기 종목이다. <ONSIDE>는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좌담회를 마련했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이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사상 최초의 16강 진출에 성공한 직후 대한축구협회는 여자축구 활성화 전략 수립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여자축구 강국들과의 실력 차를 실감했고,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변 확대가 우선돼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기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축구팀은 72팀, 등록 선수는 1915명(유소년클럽 남자팀에 등록된 여자선수 242명 포함)이다. 최근 10년 간 엘리트 선수의 수는 정체된 상태이고, 팀 수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에만 다섯 팀이 해체됐다. 2010 트리니다드토바고 U-17 여자월드컵 우승, 2010 독일 U-20 여자월드컵 3위 등 국제대회에서 얻은 쾌거는 찰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그쳤다.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된 열악한 저변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ONSIDE>가 좌담회를 마련한 이유는 지도자, 선수, 행정가가 각각의 현장에서 느끼는 점들을 공유하고, 함께 생각을 모아 여자축구가 나아갈 방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좌담회에는 전현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 선수와 각급 지도자들이 참가했으며, 대한축구협회 김세인 과장이 사회를 맡았다.

좌담회 참석자

김세인(사회)
- 대한축구협회 홍보실 미디어팀 과장
- 대한축구협회 WOW 팀

윤덕여
-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
- 前 전남드래곤즈, 대전시티즌, 경남FC, 울산현대, 포항스틸러스 코치

허정재
-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 U-15, U-16 여자대표팀 감독
- 前 풍생고, 풍생중 감독

김태희
-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 한국 U-15, U-16 여자대표팀 코치

홍경숙
- 오산정보고 감독
- 前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 선수

전가을
- 인천현대제철 선수
-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前 미국여자축구리그(NWSL) 웨스턴뉴욕플래시 선수
여자축구는 남자축구와 달리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선수 수급을 위한 구조적 해결책은?

김세인 한국 여자축구의 저변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선수 수급이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저변이 탄탄한 피라미드 구조가 이뤄져야하는데, 한국 여자축구는 초등학교 팀 수가 중고등학교 팀 수보다 오히려 적은 항아리 형태의 구조입니다. 고등학교 팀을 맡고 계신 홍경숙 감독님께서는 직접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있으실 텐데요.

홍경숙 네. 우리 팀의 경우에도 같은 지역에 중학교 팀이 없기 때문에 일반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찾아 (다른 지역의) 중학교 팀에 보낸 뒤에 고등학교로 데려오는 방식으로 선수들을 수급하고 있어요. 클럽을 찾아다니면서 여자선수들을 모으는 거죠. 학부모님들은 어린 아이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보내는 걸 꺼리다보니, 그런 데서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클럽에서 축구를 하던 선수들이 합숙소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요. 재능이 있는 선수를 찾는 것도 힘들지만, 찾아서 키워내는 것도 힘든 구조입니다.

전가을 어릴 때에는 선수 본인과 부모님 모두 합숙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 저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을 떠나 감독님 집에서 생활을 했는데,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해서 엄마에게 전화로 집에 가고 싶다며 울기도 했어요. 정서적인 면에서 어릴 때만큼은 가족들의 품에서 지내면서 축구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허정재 다른 지역에 있는 선수를 데려오려면 어쩔 수 없이 합숙을 해야 하는데, 학생이나 학부모가 합숙을 꺼려해서 선수를 데려오기 쉽지 않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클럽 위주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원 팀이 그동안 여자축구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클럽화가 답이라고 봐요. 집에서 가까운 곳에 클럽이 있어서 집에서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당장 여자 선수들만을 위한 클럽을 많이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한 명씩만 해도 서울, 경기 지역의 초등부 여자선수 200명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남자팀에서 여자선수를 육성할 때 제도적으로 혜택을 주는 방식이 이뤄진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태희 지난해 유소년 클럽리그 여자부 대회가 처음으로 열렸어요. 생활체육 부문에서 팀이 제대로 운영되고, 팀당 한 명씩만 중등부로 올라갈 수 있어도 좋은 출발이 될 겁니다. 선수 수급이 급선무예요. 클럽에서도 선수 발굴이 이뤄져야 합니다.

허정재 2010년부터 4년 동안 성남일화(현 성남FC) U-12 팀을 맡았었는데, 여자 어린이들이 심심치 않게 들어왔었어요. 여자팀만 따로는 안 하냐는 문의도 있었고요. 성남에 여자팀이 있었다면 분명히 축구를 했을 어린이들이죠. 요즘은 어린이 대상의 클럽 스포츠가 활성화돼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한 여자 어린이들이 엘리트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홍경숙 엘리트 중심이냐, 생활체육 중심이냐에 대한 논쟁은 남자축구에서도 늘 있잖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구분이 점점 없어지기를 바라요. 선수들이 더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덕여 중요한 것은 ‘내 딸을 축구 시킬 수 있겠는가’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이 나오도록 하는 것인데, 아직은 그런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죠. 모든 어린이들이 좋은 선수가 될 수는 없지만, 많은 여자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허정재 다양한 대회를 개최해서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당장 11대11 대회는 어렵겠지만, 8대8이나 풋살 등으로 소규모 대회를 만들어주면 자연스럽게 대회에 참가할 클럽도 생기리라 봅니다.
여자축구 리그제 도입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리그제 도입? 이동거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김세인 현재 여자축구는 리그제 없이 단기 토너먼트 대회만 치러지고 있는데요. 리그제 시행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

김태희 중등부 지도자들은 대부분 리그제를 원하고 있지만 초등부의 경우에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우려가 있습니다. 중등부부터는 팀 차량이 있지만, 초등부는 이동하는 것부터 비용 문제에 부딪힙니다. 강원 지역 팀은 이동거리가 길어 한 경기를 위해 하루를 꼬박 써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요.

윤덕여 협회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남자축구 역시 초중고 주말리그를 시작할 때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정착이 가능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겠지만, 남자축구에서 이미 리그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경험했으니, 여자축구에서도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김세인 팀 수가 적다보니 남자축구보다 이동거리가 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WOW팀에서도 네 권역으로 나누어 리그제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허정재 궁극적으로는 리그제 시행에 모두 동의하지만, 당장은 현실적인 문제가 큽니다. 팀 수가 어느 정도 리그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맞춰졌을 때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 산하 유스가 필요하다

김세인 2010년 U-17 여자월드컵 우승, U-20 여자월드컵 3위, 2015년 여자월드컵 16강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도 꽤 있는데요. 그 이후에 변화를 체감하신 것이 있나요?

전가을 커다란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만, 솔직히 없는 것 같아요. 힘들게 축구를 해왔기 때문에 후배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했는데, 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작년에 미국에서 뛰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여자프로팀들도 모두 산하 유스팀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6세부터 18세까지 연령도 세분화해서 리그제를 하고 있더라고요.

윤덕여 WK리그에서는 인천현대제철이 여자 유소년 팀을 운영하고 있죠. 홈경기에서 에스코트 키즈로 그 선수들이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될 거예요. 유스 시스템을 갖추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허정재 남자프로팀들도 처음에는 꺼려했지만 의무화 규정이 생기면서 유스팀 운영을 시작했고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입니다. 여자축구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돈을 들여 유스팀을 운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재정적인 지원을 해서라도 유스팀 운영을 장려해야 할 것 같아요.

김세인 여자축구연맹에서 지원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현재 여자실업팀 프런트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걸림돌이에요. 남자프로팀처럼 프런트가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고 보통 한 명이 회사 업무와 프런트 업무를 병행하는 방식이니까요.

허정재 프런트를 체계화하는 것 역시 지원책과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혼한 선수가 뛰는 무대는 한국 여자축구가 만들어야 할 과제다.
결혼한 선수가 뛰는 무대...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전가을 WK리그는 어린 선수들의 미래잖아요. WK리그가 꿈의 무대가 돼야하는데, 현실적으로 프런트 문제나 합숙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요. 선수들의 은퇴 시기도 빠르고요. 미국에는 30대 후반에도 풀타임 경기를 소화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결혼, 출산 이후에 아이들을 경기장에 데려오기도 하고요. 선수들의 자기관리도 필요하지만 지도자 선생님들의 인식과 시스템의 변화도 중요할 것 같아요.

홍경숙 저는 경남대교(현 이천대교)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결혼과 출산을 했어요. 당시 감독님과 구단에서 출퇴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고, 출산 후에 몸을 만들기까지의 기간도 기다려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저는 운이 좋았지만, 솔직히 지도자 열에 한 분 정도만 그런 열린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까워요.

윤덕여 출산 이후에 선수로 복귀한 케이스는 홍 감독이 지금까지 최초이자 마지막이에요. 해외에서는 흔한 일인데 말이에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홍 감독이 좋은 롤모델이 됐고, 앞으로도 그런 사례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김태희 어린 선수들에게는 동기부여가 정말 중요해요. 골든에이지 영재센터나 연령별 대표팀 훈련을 성인대표팀 소집과 겹치게 해서 하루 정도는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재센터 운영 횟수와 기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재 1년에 두 번만 실시하고 있는데, 분기별로 관리하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전가을 재작년에 골든에이지 훈련에 (김)정미 언니, (조)소현이랑 같이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런 자리가 앞으로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는 프로 선수들이 경기 다음날 피곤한 상태에서도 유스팀에 가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뛰더라고요. 일정 기간을 하면 지도자 자격증도 딸 수 있는 제도도 있어요. 우리 선수들도 아직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좌담회 참석자들은 저마다의 현장 경험을 통해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갔다. 여자축구에 뛰어들어 보낸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여자축구 발전과 활성화에 대한 바람과 책임감은 같았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8월호 ‘CHECKPOIN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