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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모교에서 15년, 명지대 김경래 감독의 꿈

등록일 : 2018.05.17 조회수 : 2331
명지대 김경래 감독은 올해로 15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축구 감독이라는 직업은 많은 책임이 뒤따른다. 1~2년 버티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명지대 김경래 감독(54)은 2003년 명지대 축구부 사령탑이 된 이후 올해로 15년째 팀을 이끌어오고 있다. 코치로 지낸 시간까지 합치면 20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명지대 감독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꿈과 자부심이다. “저는 명지대학교 체육학과 84학번입니다. 모교이기 때문에 명지대 축구 감독으로 있는 이 순간이 제게는 꿈이고 자부심이네요.”

199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됐던, 작지만 다부진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공격수는 이제 명지대 감독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시간의 힘은 물론이거니와, 모교를 향한 사랑이 각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명지대 축구부, 동문들의 사랑으로 크죠.”
진주고등학교 졸업 후 1984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한 김경래 감독은 4학년이었던 1987년 명지대의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이듬해 대우 로얄즈에 입단했다. 대학 시절 활약이 뛰어났기에 당대 최고의 팀인 대우 입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대우 입단 후는 결코 쉽지 않았다. “대우에 들어간 이후 6년 동안은 단 1득점도 기록하지 못했죠. 김주성, 정해원, 이태호 등 그 당시 멤버가 정말 화려했거든요. 그 때의 대우는 지금으로 따지면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이었습니다. 부상도 발목을 잡았고요”

결국 1993년 대우에서 방출통보를 받은 김경래 감독은 1994년 탄생한 전북 버팔로로 이적했다. 이 때가 그의 축구 커리어 최전성기였다. 김경래 감독은 1988년부터 1997년(1988~1993 대우, 1994 버팔로, 1995~1997 전북)까지 리그 168경기 14골 5도움을 기록했는데, 이 중 11골이 1994년 버팔로 시절에 달성한 기록이다. 이 때의 활약으로 윤상철, 라데 등과 함께 199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기도 했다.

“대우 시절 중간에 이적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지 않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고집이었어요(웃음). 그 때의 저는 대우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거든요. 다른 팀은 의미가 없었죠. 오로지 대우에서 성공하겠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경기를 못 뛰는 상황일 경우 빨리 이적하는 게 맞았어요.”

봉인 해제라고 할까? 대우 시절 경기 출전에 목이 말랐던 김경래 감독은 버팔로에서 김기복 감독의 신임을 얻으며 35경기에 출전했다. “축구 선수는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죠. 마음이 불편하거나 쫓기면 되는 일도 안 되는 법이고요. 경기에 출전하게 되니 마음이 저절로 편해지더라고요.” 친정팀이자 애증의 팀인 대우를 만났을 때는 전열을 불태웠다. “당연히 이를 갈았죠(웃음). 대우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시점이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버팔로가 창단 첫 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김경래 감독은 전북 현대에서 3년 정도 더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갔다. 그리고 1997년 리그 24경기 출전을 끝으로 은퇴했다. 당시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은 모교인 명지대였다. 전임 김희태 감독이 이끌던 명지대에서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감독으로 승격된 시점은 2003년이었다. “이 팀에 오게 된 건 간단해요. 모교라는 이유 하나뿐이었죠.” 돌이켜봤을 때 가장 좋은 기억이 남았던 곳이 바로 명지대였기에, 김 감독은 주저 없이 모교행을 택했다.

“명지대 축구부가 1975년에 창단됐는데, 축구부 동문들이 정말 끈끈해요. 명지대 출신들이 학교에 대한 애착도 크고요.” 현재 축구계에서 감독으로 활동 중인 동문들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명지대 축구부 경기를 찾아 격려하고 응원한다. “지금 U-23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학범 감독(80학번)과 내셔널리그 대전코레일 김승희 감독(86학번)이 항상 응원을 와요. 경기도 보고, 지면 위로도 해주고 좋죠. 저희를 포함해 모든 축구부 동문들이 애착이 강해요. 다른 팀보다 남다르다고 자신해요.”
명지대 선수들은 경기 출전 여부와 관계 없이 90분 내내 독려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익숙하다.
1987년의 기억, 명지대를 뛰게 하는 원동력
명지대 축구부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큰 포부로 감독직을 맡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선수들이 훈련 끝나고 난 뒤 외치는 구호가 있어요. ‘1.9.8.7’인데, 1987년은 명지대가 국민은행 축구단을 누르고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해입니다. 이후 1, 2학년대회에서는 우승했었지만 아직까지 전체 대회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했었어요. 그 때를 기억하자는 다짐인 셈이죠.”

지난 2년 동안 U리그 왕중왕전에도 가지 못했기에 김경래 감독은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유병진 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님들이 오랫동안 지지해주시고, 믿고 맡겨주셨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죠.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뿐입니다.” 올해는 달라질 거라는 자신감도 덧붙였다. 명지대는 올해 U리그 5권역에서 승점 11점으로 2위를 기록 중이다. 1위 용인대와는 불과 승점 1점 차다. 특히 시즌 개막 후 단국대(3-0 승), 성균관대(3-1 승)에 모두 세 골을 넣고 이기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수층이 얇다 보니 부상자가 생기면 걱정이죠. 6경기를 치른 지금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금방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저학년 선수들이 예상 외로 잘해주고 있어요. 올해는 꼭 왕중왕전에 나갈 거라 확신합니다. 선수들의 의지도 강하기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도 좋다. 경기에 나가는 선수든 나가지 않는 선수든 상관없이 그라운드에 있을 때는 서로가 하나로 뭉친다. 90분 내내 누구보다 목소리 크게 응원하고, 박수를 쳐주며 서로를 독려하는 모습은 명지대 축구부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저랑 15년 동안 함께 해 온 김진선 코치가 선수들을 잘 다독인 덕분이죠. 김 코치는 제가 할 수 없는 부분, 이를 테면 질책 받는 선수들을 따로 데려가 격려하고 동기부여하는 역할 등을 수행하죠. 어머니 같은 역할을 아주 잘해주고 있어요. 주장인 수비수 장준수도 선수들을 결집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어요.”

대전 코레일에서 선수 생활을 한 김진선 코치도 명지대 출신이다. 김경래 감독은 김진선 코치와의 호흡이 없었다면 15년이라는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제가 성격이 까다로워요. 김 코치가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그래도 다른 말없이 모든 걸 잘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요. 경기를 질 경우 선수들 앞에서는 내색을 못하지만, 그 스트레스를 나도 모르게 코치 앞에서 풀게 되더라고요. 그런 걸 다 받아주니 고마워요.” (옆에서 듣고 있던 김 코치는 이에 대해 “김경래 감독은 누구를 탓하는 성격이 아니다. 배려를 많이 해주시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경래 감독은 15년 동안 함께 명지대를 이끈 김진선 코치(오른쪽)와 함께 또 다른 미래를 꿈꾼다.
명지대는 내 꿈이자 자부심
팀 성적만큼 중요한 게 선수 개인의 발전이다. 대학 축구 지도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숙명이다. “선수들의 취업이 가장 고민스러워요. 너무 힘든 적이 많았거든요. 5년 전만 해도 대학 선수들의 취업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또 달라요. 한 명이라도 취업이 되지 않으면 저는 발을 뻗고 잘 수가 없을 정도니까요.”

많은 걸 고려해야 한다. 축구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은 하루 빨리 프로로 보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다른 길로 안내해야 한다. “재능이 없는 선수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다른 길로 전환시키도록 설득하는 게 선수 취업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선수들은 학업으로 전환하는 데 불안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막상 전환하고 나면 정말 잘 적응해요. 선수의 장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얘기도 하고, 듣기 싫은 얘기도 듣는 건 이젠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또 하나 중시하는 것은 인성이다. 김경래 감독은 명지대 출신인 한국축구 레전드 박지성을 예로 들었다. 김경래 감독은 명지대 코치시절 1년 6개월 정도 박지성과 함께 한 경험이 있다. “(박)지성이는 본인이 희생할 줄 알았기에 큰 선수가 됐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지성이가 거쳐 갔던 교토 퍼플상가 경기를 TV로 시청했는데, 페널티킥 기회를 본인이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차지 않고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내주더라고요.”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감독은 본인에게 차라고 했지만, 페널티킥을 내준 선수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팀에 온 선수라 공격 포인트가 하나도 없어서 자기가 양보했다’고 하더라고요. 희생할 줄 아니 선수들이 지성이를 서로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 명지대 선수들에게도 인성과 배려를 강조합니다.”

김경래 감독은 또 다른 15년을 준비 중이다. 일단 1987년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면서 굴레 아닌 굴레를 깨버리는 게 우선이다. “이번 스승의 날에 선수들이 롤링페이퍼를 써서 선물로 줬더라고요. 큰 종이에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줬는데, 선수들이 그러더군요. ‘1.9.8.7’이라는 구호를 ‘2.0.1.8’로 바꾸겠다고요(웃음). 그걸 보고 정말 가슴 한 쪽이 찡했어요. 행복한 금요일(U리그는 매주 금요일에 열린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도 있더라고요.”

“유병진 명지대 총장님을 포함한 학교 관계자분들이 축구에 정말 관심이 많으세요. 항상 저를 믿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죠. 축구부가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지만 올해는 일단 왕중왕전 진출이 목표고, 부상자들이 돌아오면 태백에서 열리는 추계대학연맹전에서 우승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명지대는 저희 홈(Home)이자 꿈이고 자부심입니다. 앞서 제가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명지대와 함께 하고 싶어요.”

용인=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안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