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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팀 해체 그 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박지영

등록일 : 2018.01.18 조회수 : 3734
박지영이 이천대교 해체 뒤 구미스포츠토토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2017년 11월 13일. 이천대교가 화천KSPO와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두 골을 먼저 내준 이천대교가 다시 힘을 낸 것은 후반 35분, 주장 박지영(30)의 만회골부터였다. 하지만 승부는 뒤집히지 않았고, 이천대교는 눈물의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

박지영은 그렇게 이천대교의 마지막 주장이자, 마지막 득점자로 남게 됐다. 3년 동안 몸담았던 팀의 해체는 박지영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박지영은 전 소속팀이었던 구미스포츠토토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손종석 감독은 애제자에게 슬쩍 주장 자리를 권했지만, 박지영은 손사래를 쳤다. 이제는 뒤에서 팀을 받치는 역할을 하겠다면서...

주장의 무게

박지영은 이미 구미스포츠토토에서 주장을 맡은 바 있다. 2012년 인천현대제철에서 당시 충북스포츠토토로 이적하면서 주장을 맡아 창단 2년차의 팀을 이끌었다. 2015년에는 이천대교로 이적했고, 1년 뒤 주장을 맡았다.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팀과 전통 강호인 팀을 이끄는 것은 사뭇 달랐다. 박지영은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성장했다고 말했다.

“주장이 되면 책임감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쉽지 않아요. 주장이 아니면 혼자 잘 하면 되는데, 주장이 되면 팀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해야하니까 압박이 생기더라고요. 잘 될 때도 그렇고, 잘 안 될 때는 더 그렇고요. 중학교 때부터 주장을 맡아왔지만, 실업팀에서 주장을 맡는다는 것은 정말 달라요. 성적을 내야하고, 돈을 벌면서 하는 일이다보니까 예민해질 수밖에 없죠. 주장을 맡으면 한 시즌 동안 시간도 더 안 가는 것 같다니까요. 모든 선수들한테 주장을 한 번씩 돌아가면서 시켜줘야 해요. 이 느낌을 알아야 해요(웃음).

토토에서 주장을 했을 때랑 대교에 가서 주장을 했을 때는 또 달랐어요. 토토에서는 창단한지 얼마 안됐고, 웃으면서 즐겁게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대교처럼 잘하는 팀에 가서는 또 다른 걸 배운 것 같아요. 이기려는 의지, 성적에 대한 욕심 같은 게 다르더라고요. 풀어줄 땐 풀어주더라도 긴장감 있게 잡아주는 역할도 필요하고요.

주장 역할을 하면서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좀 불같은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바뀌었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화를 내기보다는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요. 주장은 여러 선수들의 생각을 들어야 하잖아요. 각자의 생각이 하나하나 다르더라고요. 사람이 이렇게 각자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보통 내 생각이 이러이러하면 그 반대 생각 정도만 유추하는데, 그것 말고도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도 있어요. 그런 걸 모두 받아들이면서 하나로 뭉치게 하면서 이끌고 가야하니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박지영은 이천대교의 마지막 주장이었다.
이천대교의 해체

가뜩이나 무거웠던 주장의 무게가 지난 2017년에는 물을 잔뜩 머금은 듯 더 무거워졌다. 이천대교의 해체 소식이 전해진 것은 8월 17일. 박지영을 비롯한 선수단은 평소와 같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팀 해체의 충격 속에서 이천대교 선수단은 빠르게 마음을 추스르고, 마지막 희망과 유종의 미를 떠올리며 힘을 냈다. 이천대교는 WK리그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화천KSPO에 졌다. 아쉬움 가득했던 마지막 경기를 생각하면 박지영은 아직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대교가 해체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을 거예요. 정말 충격이었죠. 해체 발표가 난 직후에는 정말 어수선했어요. ‘우리 여기서 뭐해?’, ‘우리 운동 왜 해야 돼?’ 이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죠. 근데 그래도 대교는 대교더라고요. 너무 속상하지만, 그래도 경기에 나가서 할 건 하자고, 지는 건 싫다고, 정말 끝나더라도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제가 주장으로서 어떻게 하지 않아도 선수들 전체가 하나로 뭉쳐지는 뭔가가 있었어요.

시즌 막판으로 가면서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조금씩 다른 팀에서 영입 제안이 오는 선수들도 생기고 하다보니까,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붕 뜨는 느낌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여기서 드라마를 써보자’, ‘우승을 해서 기적을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정말로 해체가 눈앞으로 다가오니까 마음을 합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플레이오프에서 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간 것도 신기하기도 해요. 다 놓아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마무리는 잘하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대교 단체 채팅방이 있거든요. 지금까지도 아무도 안 나갔어요. 다들 흩어지고 나서 후배 한 명이 ‘그냥 생각나서 톡 했어요’하면서 올렸는데, 다들 안 나가고 있던 걸 안 거죠. 우리끼리 ‘정말 대박이다’ 하면서 놀랐어요. 마음이... 그래요. 좋든 싫든 그동안 정도 많이 쌓였거든요. 저는 3년 있었지만, (전)민경 언니처럼 10년 넘게 있던 선배들 마음은 어떻겠어요? 서로서로 그리운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제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단체 채팅방을) 나가고 싶어도 더 못나갈걸요(웃음)?”

준우승 전문가?

이천대교가 끝내 인천현대제철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해체했다는 점은 박지영의 또 다른 아쉬움이다. 2015년과 2016년 연속 준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2015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부차기로 패했던 일은 박지영이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쉬움이 컸다. 박지영은 자신의 첫 실업팀이었던 인천현대제철에서 이미 세 번의 준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현대제철에 있을 때 준우승을 세 번했어요. 그 경쟁이 너무 힘들어서 좀 더 마음 편하게 하고 싶어서 토토로 이적했는데, 하다보니까 다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교에 갔는데 2위만 세 번(웃음). 우승이랑 인연이 없나 봐요. 2015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부차기로 졌을 때는 정말 축구를 그만 두고 싶었다니까요. 축구하면서 정말 제일 간절히 이겨보겠다고 뛴 경기였거든요. 연장전 추가시간에 동점골 먹고 승부차기에 가서 졌잖아요. 그러고 나니까 축구가 싫어지고 모든 걸 다 놓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런데 또 (축구를) 하게 됐어요(웃음). 축구가 아직 좋아요. 예전에는 몸도 안 좋으니 서른까지만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넘고 보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해보고 싶어졌어요.

우승은 기대 안 하려고요. 물론 감독님 생각은 다르시겠지만...(웃음) 지금 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지금은 새로운 팀에 왔으니 열심히 해서 인정받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아직은 대교 해체되고서 쫓겨 온 느낌이거든요. 새 팀에 와서 잘리기 싫으면 열심히 해야죠(웃음).”
지난해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에서의 박지영. 공교롭게도 상대는 구미스포츠토토다.
당장 축구 그만 두라더니... 어느새 실업 10년차

박지영에게는 보통 축구선수들에게 없는 핸디캡이 있다. 골반 이상으로 인해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다르다. 중학생 때 처음 이 문제를 발견했을 때, 병원에서는 당장 축구를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공을 차는 것이 마냥 좋았던 박지영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박지영은 어느덧 실업 10년차 베테랑이 됐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가 좋았어요. 고향 밀양에서 남자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동네 축구를 하고, 팀을 만들어서 다른 학교랑 붙기도 하고요. 중1때부터 울산에 여자축구부가 있다는 걸 알게돼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했죠. 그때 아빠가 끝까지 할 거면 하고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골반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안 건 얼마지나지 않아서였어요. 아빠가 걷는 게 이상한 것 같다고 해서 병원에 가보니 골반이 탈골된 채로 굳어버렸대요. 의사 선생님이 당장 축구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잘한다는 병원 20~30군데를 찾아다녔는데 다 그만두래요. 근데 딱 한 병원에서 ‘축구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면 해. 대신 아프면 바로 그만둬야해’ 이러더라고요. 부모님은 계속 그만두라고 하셨지만 제가 죽어도 해야겠다고 울고불고 하니 어쩌지 못하셨죠.

지금도 통증은 약간씩 있어요. 양쪽 다리 길이가 2센티미터 정도 차이가 나요. 오른쪽 다리가 접히지 않아서 양반다리도 안되고요. 지금도 병원 가면 그만두라는 얘기가 나와요. 그래도 꾸준히 재활을 하면서 이제는 제가 관리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처음 실업에 올 때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쟤는 당장은 잘해도 오래 못 뛸 거다’하는 인식이 있으니까 각 팀에서 저를 잘 안 뽑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지금까지 잘 해올 수 있었어요. 아픈 거 티내기 싫어서 더 죽어라 노력 했거든요. 친한 친구들은 인생역전이라고 해요. 제일 빨리 그만둘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고요(웃음).”

여전히 축구가 좋아
10년 넘게 핸디캡을 견디고 극복하며 축구를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축구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축구, 그 자체가 좋다고 박지영은 말한다. 요즘에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 푹 빠져있다. 맨체스터시티에서 뛰는 케빈 더브라위너의 플레이를 보며 자극을 받고 있다. 구미스포츠토토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우승에 대한 욕심보다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축구하겠다는 각오로부터 출발한다.

“어릴 때부터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를 좋아했는데, 요새는 더브라위너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원래도 잘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완전히 물이 오른 것 같아요. 공을 넣어주거나 뛰어 들어가거나 하는 플레이가 저랑 비슷한 점이 있어서 많이 배우고 싶고 따라하고 싶어요. 완전히 꽂혔어요. 충격을 먹었죠. 해외축구 보는 걸 좋아해서 새벽 시간이라도 더비전 같은 건 꼭 보거든요. 동료들이 신기해해요. ‘저 언니 노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하면서요(웃음).

축구를 하면서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여전히 축구가 좋아요. 성적을 신경쓰다보니 어렸을 때만큼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해요. 가끔 친한 선수들끼리 모여서 승부에 상관없이 풋살도 하고 하는데, 그렇게 아직 축구가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렇죠? 이제는 한 해, 한 해 몸 관리하면서 즐겁게 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최고일 때, 박수 받을 때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체력이 점점 떨어지더라도, 90분을 다 못 뛰더라도 차근차근 내려가고 싶은 느낌이에요.

그렇다고 쉬엄쉬엄하겠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팀 공헌도가 높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번 시즌에는 골이든 어시스트든 다섯 개 이상씩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 해온 것은 이전의 일이고, 새 팀에 왔으니까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죠.”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