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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박기욱 현대고 감독 “나는 복 많은 지도자”

등록일 : 2017.12.20 조회수 : 5985
박기욱 울산현대고 감독은 부상 때문에 불운한 선수 시절을 보냈지만 지도자로서 꽃을 피우고 있다.
2017 대한축구협회(KFA) 시상식에서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은 박기욱 울산현대고 감독은 만으로 39세 밖에 안 된 젊은 감독이다. 무릎 부상으로 20대 후반에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곧바로 지도자로 변신해 10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박 감독은 지난 19일 반포한강공원에 위치한 세빛섬에서 열린 2017 KFA 시상식에서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았다. 올해의 지도자상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주최하는 리그(초,중,고등리그, 대학 U리그, K3리그)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준 남녀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박 감독이 이끄는 울산현대고는 올 시즌 5관왕(전국고교축구대회, 전-후기 K리그 주니어, 전국체전, 후반기 왕중왕전)을 달성했다. 이날 현대고의 오세훈이 베스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며 현대고는 겹경사를 맞았다.

박기욱 감독은 현역 시절 울산대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울산현대에 연고지명으로 입단한 유망주였다. 울산, 상무, 제주를 거친 그는 그러나 두 차례나 무릎 부상을 당하며 200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수 시절에는 불운하게도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었지만 지도자 생활은 달랐다. 2008년 모교 부경고 코치로 부임한 박기욱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현대중 코치, 2014년 현대고 코치를 거쳐 2015년 현대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박 감독은 부임 첫 해에 현대고를 사상 최초로 (전반기 고등리그) 왕중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3년차인 올해는 5관왕에 올랐다. 또한 이상민(숭실대) 오인표(성균관대) 김건웅, 이상헌(이상 울산) 등 각급 대표팀과 프로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길러냈다. 올해의 지도자상은 이 모든 노력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었다.

세빛섬에서 만난 박 감독은 “나는 운 좋게 좋은 선수들을 만나 우승 타이틀을 많이 가졌다. 복이 많은 지도자”라며 자신을 한껏 낮췄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지도자로서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감독은 겸손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왼쪽부터) 박기욱 울산현대고 감독,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 권무진 예성여고 감독. 윤덕여 감독이 시상자이고, 나머지 두 명이 수상자다.
-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게 된 소감은.
지도자로서 많은 상을 받았지만 이 상은 처음이다. 다른 우수한 지도자가 많은데 이런 큰 상을 주셔서 고맙다. 앞으로 더 잘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팀과 선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

- 올해 5관왕에 올랐다. 작년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는 비결은.
동계훈련부터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우승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하고자하는 의지가 경기 내용으로 나타났다. 노력이 좋은 성과로 이어져 기쁘다. 선수들이 개인 능력이 있지만 인성도 좋다. 지도자의 말을 잘 따라온다. 또한 형들이 잘 만들어놓은 것을 후배들이 잘 따라간다. 자기들이 해야할 것을 스스로 깨우친다.

- 선배들이 만든 전통이 후배들에게 전수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현대고등학교만의 자랑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챙긴다. 같은 클럽하우스를 쓰면서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다. 먼저 졸업해 울산현대에 입단한 김건웅, 이상헌이 그런 역할을 잘 해줬다. 김규형, 오세훈 등 올해 졸업생들도 후배들을 잘 챙길 것이다. 선배들이 프로에 가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길 것이다.

- 현대고는 전국에서 좋은 선수들이 모인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운 좋게 좋은 선수들을 가르쳤다. 능력이 좋은 선수들은 개인 특성도 강하다. 그래서 인성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팀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과감히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나이에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 감독님이 길러낸 오세훈이 올해 베스트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다.
현대중학교 시절부터 나와 6년을 같이 했다. 중학교 때는 센터백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오면서 센터포워드로 전향했다. 바뀐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아직 기본기를 더 다듬어야 한다. 지금이 끝이 아니다. 프로에 가서 갈고 닦아야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 감독님의 요구에 따라 포지션을 바꾼 것인가.
센터백 포지션에 같은 왼발잡이인데다 비슷한 성향의 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세훈은 공격에 더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센터포워드를 시켰다. 하지만 대회 때 센터백이 없으면 가끔 시키기도 했다.

- 올해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전반기 왕중왕전에서 매탄고에 졌을 때 마음이 아팠다. 부상으로 빠진 선수가 있었지만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선수들이 많이 안타까워하더라. 나는 선수들에게 ‘우승이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더 준비해 발전하자’고 말했다. 매탄고전 패배를 통해 더 강해지고 뭉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전국체전과 후반기 왕중왕전에 우승할 수 있었다.

- 아픔이 있었기에 후반기 왕중왕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올해 3학년 12명이 부상 등을 이유로 동계훈련 이후 한 번도 같이 모여 경기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왕중왕전에서 다같이 뛰게 하고 싶었다. 3학년들이 마지막 대회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선수들이 대진표를 보더니 매탄고를 꼭 다시 만나 복수하고 싶다며 별렀다. 비록 매탄고와 붙지는 않았지만 결승전에서 금호고를 승부차기 끝에 어렵게 이기고 우승했다.
박기욱 감독과 선수들이 후반기 고등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 현대중과 현대고에서 코치, 감독으로 7년을 보낸 소회는.
2011년 현대중에 온 이후 좋은 선수들과 많은 걸 함께 이뤘다. 우승 타이틀을 많이 가졌다. 좋은 선수를 가르친 것이 나에겐 복이다. 유소년 지도자를 하면서 선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배웠다. 예민한 청소년기의 선수들에게 일률적으로 똑같은 것만 강조하고 원하면 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수마다 다른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훈련 프로그램을 짜거나 상담을 했다.

- 선수들에게 자상한 편인가, 엄한 편인가.
나는 현대중 코치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했다. 가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장난을 치면 아이들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가 주로 쓴소리를 하는 편이고, 코치가 다독여주는 역할을 한다. 둘 다 뭐라고 하면 아이들이 답답해서 생활할 수가 없다.

- 사생활도 규제를 많이 하는 편인가.
내가 많이 컨트롤하는 편이다. 물론 선수들은 힘들어할 것이다. 전화도 마음대로 하고 싶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축구가 1순위이기 때문에 컨트롤하는 게 맞다고 본다. 휴대전화는 학교 갈 때, 오후 훈련을 마치고 저녁에 준 뒤 다시 반납한다. 현대고등학교의 룰이다.

- 어떤 팀을 만들고자 했으며 얼마나 이뤄냈다고 보는가.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재밌는 축구를 하고 싶다. 3골 먹어도 4골 넣을 수 있는 축구를 하자고 말한다. 득점이 나는 경기를 원한다. 득점을 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다. 매년 선수가 달라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런 축구가 정착된 것 같다. 고등학교 레벨에서는 우리가 상위 클래스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올라가야 한다. 안주하지 않도록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 프로 산하 유스팀 감독으로서 말 못할 애환이 있다면.
우리는 공공의 적이다. 3년째 그렇다. 매 경기 만나는 상대가 수비 위주의 역습 축구를 한다. 힘들지만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공격 축구를 추구하는 팀이 좀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소년 레벨에서도 실점을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만 하면 좋은 축구가 나올 수 없다. 득점도 할 수 있지만, 실점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더 많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고 본다.

- 프로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선수를 길러내는 것도 과제다.
차별화된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기보다 패스, 컨트롤 등 기본기를 반복 훈련으로 익힌다. 부족한 피지컬은 나중에 충분히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기 숙달에 집중한다.

-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좋은 선수만 다룰 줄 아는 지도자가 아닌 부족한 선수도 잘 만들어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그러면서 모두가 즐거워하는 축구를 하고 싶다. 선수들도 즐길 수 있는 축구를 해야 그 선수들이 프로에 가서도 즐기면서 축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선수 시절에는 프로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고, 지도자가 된 지금은 프로 감독이 되는 게 꿈이다. (언제쯤 프로 감독이 될 수 있을까) 빠르면 좋겠지만 빨리 올라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준비가 된다면 도전을 해보고 싶다.

글 = 오명철
사진 =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