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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대표팀의 숨은 일꾼 1] 악역을 자처하는 김은정 코치

등록일 : 2017.10.19 조회수 : 5746
여자 대표팀에는 윤덕여 감독 밑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는 코칭스태프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는 여자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를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 시간에는 윤 감독과 함께 여자 대표팀에 부임한 김은정 코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악역을 맡고 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여자 대표팀의 윤덕여 감독이 자상한 아버지라면 김은정 코치는 엄한 어머니다. 코칭스태프 중 유일한 여성인 김 코치는 선수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진심에서 우러난 쓴소리를 한다.

김 코치는 윤 감독이 여자 대표팀을 맡기 시작한 2012년 12월에 코치로 함께 합류했다. 5년 동안 여자 대표팀과 동고동락했기에 누구보다 팀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대표팀을 더 잘 이해하려면 김 코치의 이야기를 꼭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 대표팀이 미국과의 원정 2연전을 앞두고 훈련 중인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김 코치와 독대했다.

23세에 시작한 지도자 생활

김은정의 선수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은정은 창덕여중-현대고(압구정동)-경희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김은정은 대학 시절 당한 아킬레스건 부상의 후유증으로 더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만 뒀다. 그때가 2003년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킬레스건을 다쳐 1년을 쉬었어요. 졸업할 때 쯤 아버지가 축구를 하면 얼마나 하겠냐고 하시면서 그만 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때는 실업팀이 현대제철과 막 창단한 대교 뿐이었죠. 실업팀에 가는 선수도 극소수였고요. 저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실업팀에 가면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축구를 그만 뒀죠.”

은퇴한 김은정은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서울 알로이시오 초등학교 여자축구부에 코치로 부임해 3년을 머물렀다. 2006년 경남으로 내려간 김은정은 창원 대방중학교, 함안 함성중을 거쳐 함안 대산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다. 대산고에서는 여민지를 여자축구를 이끌 재목으로 만들었다.

“경남에서 7년을 머물렀고, 대산고 감독을 5년 정도 했어요. 그때 (여)민지 덕분에 좋은 성적이 나서 매스컴도 탔죠. 그리고 대산고에 있을 때 당시 경남FC 코치였던 윤덕여 감독님을 만났어요. 한 번은 저희 숙소를 찾아오신 적이 있어서 제가 차려드린 밥을 드신 적도 있었죠(웃음). 그리고나서 운명처럼 윤 감독님을 2012년에 다시 만났어요. P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러 가서 만났는데 윤 감독님이 저를 보더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산고 시절에 만났었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서야 기억을 하셨어요.”

윤 감독을 만나 여자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김은정은 대한축구협회와 인연을 맺었다. 2009년부터 파트타임으로 협회 전임지도자로 일했다. 그해는 최덕주 감독을 도와 U-17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종훈련과 U-17 월드컵 본선에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다. 대산고 측에서 대표팀과 학교 일을 함께 할 수는 없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도 최덕주 감독을 도와 U-19 여자 대표팀 코치를 했던 김은정은 U-20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 후 대산고를 떠나 윤덕여 감독과 함께 여자 A대표팀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2012년 12월이었다.
잊을 수 없는 2013년 동아시안컵

5년 동안 여자 대표팀과 함께 한 김은정 코치는 대표팀의 일거수 일투족을 속속 들이 꿰고 있다. 그래서 김 코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만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김 코치는 2013년 한국에서 열렸던 동아시안컵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이었는데 우리가 네 팀 중 3위를 했어요. 희한하게 북한, 중국을 상대로 잘 하고도 두 번 다 졌죠. 마지막 경기는 일본전이었어요. 일본은 1승1무를 한 상태였는데 아마 우리를 이기고 무조건 우승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하는 대회에서 꼴찌를 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일본과 경기 전날 훈련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좀 했습니다.”

“강하게 말했어요. ‘너희는 대표 선수도 아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라고 라면서 선수들의 자존심을 긁었죠. 쌍시옷 들어가는 말까지 섞어서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선수들이 물론 열심히 뛰지만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죠. 열심히 하면서 잘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잘 해야 여자축구가 발전하고, 여자 아이들이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축구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한바탕(?) 하고나니 처음에는 아이들이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납득을 하더라고요. 눈빛이 달라졌죠. 결국 일본을 2-1로 이기고 꼴찌를 면했어요. 일본 이기고는 우리가 우승한 팀 같았어요. 통일이 된 줄 알았다니까요(웃음).”

지금도 한국 여자 대표팀은 일본과 붙으면 어려운 경기를 하지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2013년만 하더라도 일본과의 실력차가 컸다. 선수들도 주눅 들어 제 플레이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을 이겼으니 승리의 기쁨이 배가됐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여기서는 제가 악역을 맡아야 해요. 하지만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죠. 감독님이 지적하는 사항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 선수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어요. 메시지를 잘 전하되 선수들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잘 포장하는 게 중요해요. 여자 선수들은 남자에 비해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모범이 되는 조소현, ‘아픈 손가락’ 여민지

김 코치는 5년 동안 대표팀을 거치며 여러 선수들을 만났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든 선수가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김 코치가 인상적인 선수로 꼽는 선수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조소현, 다른 한 명은 여민지다. 조소현을 뽑은 이유가 경기장 안팎에서 모범이 되는 선수여서라면 여민지는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아파서였다.

“조소(선수단에서 조소현을 부르는 약칭. 지소연과 이름이 헷갈려 이렇게 부른다)는 자기 관리가 철저해요. 훈련할 때 컨디션 조절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열심히 하죠. 훈련하고 나면 피곤한데 소현이 방은 항상 불이 켜져있어요. 거기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영어, 일본어를 공부해요. 저도 선수 생활 해봐서 알지만 그게 참 힘든 일이거든요. 그리고 말 없이 궂은 일도 도맡아 하죠. 언니가 그렇게 하니까 동생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조소의 말에 권위가 생기는 것이에요.”

“(여)민지는... 가슴이 아프네요. 무릎 십자인대를 다치는 걸 제 눈으로 두번이나 직접 봤죠.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2015년 월드컵에 나가기 전에는 정말 안타까웠어요. 연습경기를 하다가 다쳤는데 그 다음날이 월드컵 출정식이었거든요. 선수들은 기쁜 마음으로 출정식을 가는데 저는 중간에서 입장이 참 난감했죠. 민지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어요. 아마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됐겠지만 그래도 미안하죠. 출정식 내내 민지를 피해다녔어요. 그때 부상에서 회복해 몸이 한창 올라올 시점이라 기대가 컸는데 그렇게 됐죠. 물론 제 제자라 아쉬운 것도 있지만 윤 감독님도 민지를 선발로 생각하고 계셨기에 더 그랬어요.”

P.S. “이번에 미국 와서도 한 소리 했어요”

김 코치는 미국과의 원정 2연전을 치르기 위해 미국에 건너와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17일(한국시간) 첫 훈련을 마치고서다.

“한국에서는 잘 시간에 운동을 하니 힘들어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어요. 그리고 경기를 하다보면 스타팅 멤버가 미리 대략적으로 정해지거든요. 내려놓는 선수가 없어야 하는데 첫 훈련에서 그런 모습이 보여서 지적했습니다. 다음날은 어땠나고요? 훨씬 나아지지 않았던가요?”

이래저래 김 코치는 쓴소리를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쓴소리를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건 김 코치의 여자 선수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뉴올리언스 = 오명철
사진= 류보형,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