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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이 2부리그 꼴찌팀 선수로 사는 법

등록일 : 2017.09.12 조회수 : 4946
대전시티즌 황인범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 예선에서 군계일학은 황인범(21)이었다. 황인범은 사활이 걸린 베트남과의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한국은 베트남을 2-1로 이기며 2승 1무로 대회 본선행을 확정했다. 프로 선수들이 대거 빠진 이번 대회에서 2부리그(K리그 챌린지) 꼴찌팀에 몸담고 있는 황인범은 홀로 빛났다. 챌린지 무대에서도 꿋꿋이 성장하는 황인범을 더 알고 싶었다.
U-22 대표팀의 일원으로 베트남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 예선에 참가한 황인범은 가장 큰 고비였던 베트남과의 3차전서 결승골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베트남 다녀온 건 내 인생의 전환점“

- U-22 대표팀에 뽑혀 베트남에 다녀오자마자 치른 수원FC와의 리그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본인의 활약은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을까.
오랜만에 소속팀 경기를 뛰었는데 몸이 전반부터 힘들었다. 전반 막판에 완벽한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해 부담감을 안고 후반에 들어갔다. 후반에 힘들고 어지러워 집중력이 떨어졌고, 볼터치 등 사소한 실수가 많아 경기력은 만족하지 않는다. 다음 경기를 준비할 때는 공격포인트보다 내가 만족할 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격포인트는 작년보다 페이스가 늦지만 자신감이 올라왔으니 앞으로 몇 개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 대전의 미래라는 평가를 들으면 어떤가.
형들에게 정말 고맙다. 같은 프로 선수여도 아직 한국은 어린 선수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더 혼나는 문화가 있다. 그런데 우리팀의 형들은 경기에 집중하지 못할 때를 빼면 실수한 것을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는다. 형들이 기를 죽이면 아무리 좋은 선수여도 빛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형들도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는 편이다.

-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날, 공항 인터뷰에서 ‘대표팀에 다녀온 것이 선수로서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고등학교 때 주장을 하긴 했지만 프로에서는 막내라 내가 할 역할만 하면 됐다. 그러나 대표팀에 가니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을 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역할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느껴서 경기할 때 리드하려고 노력했다(황인범은 이번 대회에서 부주장을 맡았다). 다른 곳도 아닌 대표팀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선수로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대표팀에서는 (이)진현이와 중앙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진현이가 공격적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나도 공격적이다. 그래서 둘다 나가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내가 밑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진현이가 자유롭게 하도록 놔두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골 넣는 장면 빼고는 나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플레이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 챔피언십 예선에서 2골을 넣었고, 베트남전 결승골을 넣어 팀의 본선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이번 대회를 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점은.
대표팀에 갈 때 ‘축구선수로서 분위기 반전을 하자’고 생각하고 갔는데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베트남과 경기는 ‘인생 경기(내 인생에서 손꼽힐 명경기라는 뜻의 조어)를 해야겠구나’라고 다짐했다.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집중력을 쏟아낸다는 의미에서 인생 경기를 하겠다고 말이다. 양국 국가가 울릴 때 혼자 속으로 ‘오랜만에 연령별 대표팀에서 잡은 기회인데 이게 잘못 돼 돌아가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번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건 여담이지만 베트남에서 대회를 치르면서 내 축구 인생 중 최악의 조건에서 훈련과 경기를 했다. 주장 (두)현석이 형의 호텔 방에서는 도마뱀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훈련장 여건도 좋지 않았고, 식사도 제때 준비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분위기 반전을 하자는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프로 입단한) 재작년에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컨디션이 좋았던 상태였다. 작년에도 기복은 있었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내용으로 리그를 마쳤다. 그러나 올해 감독과 선수가 바뀌며 적응이 힘들었다. 내 경기력도 작년보다 못하다는 게 느껴지니까 스스로 답답했다. 이번에 대표팀에 가서 개인기량이 좋은 선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면서 다시 한번 동기부여를 하자는 생각으로 대회를 다녀왔다.
황인범은 우선지명으로 대전시티즌에 입단했다.
"제가 지도자 복은 있나봐요“

- 시계를 2년 반 전으로 돌려보자. 우선지명으로 대전에 입단할 당시인데 대전 유니폼을 입은 소감은.
처음 대전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리그 엔트리에 들어 경기에 나간다고 하니까 어떡하나 싶더라. 동계훈련 때 연습경기를 하면 볼을 다 뺏겨서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엔트리에 들어서 걱정이 많았다. 3월 21일 제주와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데뷔전을 치렀는데 0-5로 깨졌다. 중·고등학교부터 나름 잘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이제 프로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최악의 데뷔전을 하고 나니까 막막했다.

- 시민구단 대전은 구단 안팎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팀이다. 그런 팀에 입단한다는 것에 대해 본인 스스로나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을텐데.
유성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는 수도권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전 유스팀) 충남기계공고에 입학하는 게 프로로 빨리 가는 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민구단에 입단한다는 것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데뷔할 때만 해도 서울, 수원, 전북 같은 기업구단에서 유스팀 출신의 스무살 선수가 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전도 마찬가지였지만 유스 출신으로 입단하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있다고 봤다. 시민구단이 열악한 면은 있지만 그때는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 데뷔골이 터진 시점(5월 30일 포항 원정경기)도 팀이 어수선할 때였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인해 조진호 감독이 중도 사퇴하고 김영민 수석코치가 대행일 때였는데 그 경기에서 구단 최연소 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조진호 감독님이 사퇴하고 김영민(영문명 마이클 김) 수석코치가 대행으로 그 경기를 맡았다. 그분이 캐나다 교포라 마이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나는 그분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마이클 선생님이 항상 활발하고, 선수들에게 말을 많이 거는데 유독 나한테는 말을 잘 안 걸로, 지적만 했다. 그래서 경기에 못 나갈 줄 알았는데 포항과 경기를 앞두고 나를 선발팀에서 훈련시켰다. 그리곤 나를 불러서 공격할 때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고, 수비할 때는 황지수 선수만 따라다니라고 했다. 주문대로 플레이했고, 전반 종료 직전에 골을 넣었다.

그런데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마이클 선생님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골 세리머니를 하더라. 나중에 팀 닥터님과 매니저 형들에게 들었는데 마이클 선생님은 감독님에게 나를 엔트리에 포함시키고, 경기에도 출전시켜야 한다고 항상 추천했다고 하더라. 그분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저런 모습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도자는 특정 선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이클 선생님은 2군 선수까지도 똑같이 대해주신다.

- 포항전 데뷔골을 시작으로 서울, 성남, 전북 등 강팀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잘 나가다 7월 12일 전남과 홈 경기에서 발가락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됐다. 이미 금이 간 상태에서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고 들었다. 자세한 사정을 말해달라.
7월 5일 전북전에서 1골 1도움을 해서 스스로 몸상태가 너무 좋고, 자신감이 최고조로 올라왔다. 그런데 전북전이 끝나고 불편한 느낌이 있어 병원에 가 검사를 해보니 왼쪽 새끼발가락에 실금이 갔더라. 일단 울산전은 건너뛰고 12일 전남전에 뛸 수 있도록 휴식을 취했다. 전남과 경기를 마치면 2주 휴식기가 있어 이 경기만 뛰고 쉬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기 하루 전에 조깅만 하고 경기에 나섰는데 몸이 정말 좋았다. 나는 원래 운동을 하루라도 안 하면 몸이 안 좋은데 그날따라 몸상태가 좋고, 볼터치도 잘됐다. 그러다 사이드에서 치고 나가다 패스를 내주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누구와 부딪힌 것도 아닌데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직감적으로 부러진 것 같았다. 결국 그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됐고, 겨울 전지훈련까지 여파가 있었다.

- 그래도 조진호 감독이 물러난 후 부임한 최문식 감독과는 구면이었다.
최 감독님이 나를 U-16 대표팀에 처음 불러주셨다. 나에게 패스를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리고 3년 만에 프로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최 감독님이 부임한다는 발표가 났을 때 나를 아시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내가 아직 어리고, 여기는 프로인데 나를 써주실까 싶었다. 그런데 부임 후에도 계속 기회를 주셨다.

작년에는 몸이 완전치 않은 상태에서 일주일 두 경기를 하니까 후반에는 제대로 뛰지 못할 정도로 지쳤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벤치 주변에서 일부러 힘든 티를 막 냈다. 그렇게 하면 교체를 해주실까 싶어서 말이다(웃음). 그런데 감독님이 그 모습을 보고도 교체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힘든 고비를 이겨내라는 의도로 그렇게 하신 것 같다. 최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프로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16시즌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미드필더에 뽑힌 황인범
벤피카 이적 무산? “나를 다시 찾게 만들겠다”

- 2016시즌에 팀은 강등됐지만 개인적으로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미드필더로 뽑혔다. 작년 시즌을 돌아보면 무엇이 잘 됐다고 보나.
잘 했다기보다는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한 것이 의미 있다. 시즌 전 전지훈련을 하면서 부상 후유증이 있었다. 운동을 하다가도 킥이나 슈팅을 하면 통증이 재발해 며칠씩 쉬었다. 시즌 초반 3경기에 나서지 못했는데 팀이 3연패를 했다. 그때 열심히 뛴 형들은 욕을 먹는데 경기에도 나가지 않는 나는 상대적으로 칭찬을 받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게 참 싫었다. 그래서 몸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4번째 경기에 나가겠다고 했다. 지더라도 팀과 함께 하고 싶었다. 부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해서 나도 조금 통증이 있는 건 참고 뛰었다. 다행히 부상 없이 시즌을 치렀다. 작년 시즌은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됐다. 한 시즌을 풀로 뛴 적이 없으니 올해는 어떻게든 완주하자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몸관리를 해야하는지 배운 시즌이었다.

- 지난 겨울 포르투갈 벤피카가 영입 제의를 했다. 이적료 협상이 원활하지 않아 무산됐는데 아쉽지 않나.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작년 10월쯤 에이전트를 통해 벤피카의 영입 제의 소식을 들었다. 긴가민가했다. 시즌 후에는 구체적인 대화가 오고 간다는 말을 들어 진짜 되는건가 싶었다. 12월쯤 벤피가 구단 측에서 유니폼을 보내왔다. 벤피카 회장에게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찍어보내면 좋아할 것이라고 에이전트가 말해 사진도 찍어보냈다. 이적료, 연봉, 옵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서류도 왔다. 이적료만 합의되면 가는 상황이었다. 언제 갈지 모르니 잘 준비하라고 했다. 그런데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결국 무산됐다. 벤피카와 대전의 이적료 협상이 잘 되지 않았다.

솔직히 아쉽긴 하다. 대전 구단에서는 벤피카가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같은 빅리그 클럽이 아니라 약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유스 출신으로 공들여 키운 선수이기 때문에 더 좋은 대우를 받고 가길 원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아쉬워해도 어쩔 수 없다. 나중에 더 좋은 팀에 가거나, 아니면 더 약한 팀에 가더라도 나에게 맞는 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2부리그 꼴찌 팀의 선수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반대로 강팀이 아닌 이곳에서 얻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얻은 게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꼴찌라서가 아니라 대전에 3년째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안주하게 되더라. 내가 아무리 동기부여 요소를 찾으려 해도 힘든 점이 있다. 벤피카든, 다른 팀이든 가면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인데 지금은 모든 게 익숙해졌다. 동기부여를 스스로 해야하는데 그게 시즌 초반에 어려웠다.

다행히 이번에 대표팀에 뽑혀 베트남에 다녀오면서 매 경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느꼈다. ‘마음 먹으면 되는 건데 내가 안주한 면이 있었구나’라고 느꼈다. 2부리그 꼴찌팀에 있으면서 좋은 점을 꼽는다면 대전에 3년 있으면서 성적은 안 좋았지만 어린 선수로서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을 쌓았다. 같은 나이의 선수들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뛰었을 것이다. 그런 점이 감사하다.
황인범은 공격포인트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기력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황인범과 대표팀, 그리고 미래

- 2012년 AFC U-16 챔피언십 본선 때 연령별 대표팀에 처음 뽑혔다. 당시 8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져 4위까지 주어지는 U-17 월드컵 출전권을 놓쳤다.
우승을 목표로 하고 갔는데 8강에서 떨어져 U-17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 대회가 막 끝났을 때는 아쉬웠지만 금방 소속팀으로 돌아와 경기를 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중요한 기회였는지 잘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2013년 U-20 월드컵에서 권창후, 류승우 형들이 활약하며 8강에 가고, 언론에 부각되는 것을 보니 ‘아, 우리가 좋은 결과를 냈다면 저렇게 됐겠구나’라고 후회했다. 2014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때는 직전 대회인 SBS컵에 뽑혔는데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챔피언십 본선 명단에 들지 못했고, 그때도 U-20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 연령별 대표팀에서 함께 뛴 황희찬과 절친한 사이로 알고 있다. 황희찬과는 언제, 어떻게 친해졌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상비군에 뽑혀 남해에서 경기를 할 때 희찬이가 우리 방에 놀러와 몇 마디 한 적이 있다. 가까워지게 된 건 2012년 U-16 대표팀에 뽑혔을 대다. 대표팀에 가면 많은 선수들이 느끼겠지만 매번 소집되는 선수들끼리 친하다. 어쩔 수 없이 텃세가 있다. 그때 희찬이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 파주NFC에는 처음 갔는데 식당 밥이 참 맛있더라. 그래서 내가 밥을 엄청 먹으니까 희찬이가 아이들이 다 들리게 “인범아, 파주 밥 처음 먹냐”고 했다.

아이들이 엄청 웃었다. 좀 민망하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희찬이와 친해졌다. 요즘도 모바일 메신저로 매일 대화한다. 희찬이가 다시 나와 같은 팀에서 발을 맞추고 싶다고 했다.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희찬이는 다른 한국 공격수와 움직임이 다르다. 용병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제 희찬이와 발을 맞추려면 내가 A대표팀에 가거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혀야 가능할 것 같다. 각자 위치에서 더 열심히 해서 꼭 다시 만나고 싶다.

- 내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각오도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부터 내 목표 중 하나였다. 지금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일단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먼저다. 아시안게임이라는 동기부여 요소가 있으니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고 독하게 마음 먹을 수 있다. 희찬이와 같이 뛰기 위해서라도 더 페이스를 끌어올려야 한다.

- 프로 3년차인 올해의 목표는 무엇인가. 장기적인 목표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공격포인트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기력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게 목표다. 그러다보면 공격포인트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를할 때 팀이 최대한 높은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한다.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막판 스퍼트를 해보겠다. 올 시즌을 잘 마치고 내년 1월에 AFC U-23 챔피언십에 나가는 게 목표다. 나아가 아시안게임, A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내 값어치를 보여주고 싶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9월호 ‘THE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오명철
사진=대한축구협회, A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