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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선수 이요한이 아닌 지도자 이창현의 꿈

등록일 : 2017.09.04 조회수 : 8471
선수 은퇴 후 강구초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창현(개명 전 이요한).
선수 이요한은 다 피지 못한 꽃이었다.

동북고 시절 수비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던 이요한은 2004년 인천유나이티드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한 뒤 제주유나이티드, 전북 현대, 부산아이파크, 성남FC를 거치며 리그 145경기 출전에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2009년 전북의 K리그 우승, 2011년 부산의 극적인 6강 플레이오프 진출, 2014년 성남FC의 FA컵 우승 등 역사가 탄생한 자리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있었다.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는 2004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 2005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등 굵직한 무대를 경험했다.

충분히 꽃을 피울 수 있었고, 더 화려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이요한은 2008년 무릎 인대 파열로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예선에 꾸준히 출전한 주요 멤버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이후 꼬박 1년을 쉬었다. 2012년 부산 시절에는 또 다시 무릎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고, 그 해 리그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2015년 성남 시절에는 동계 훈련 중 안면 부상을 당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치명타였다.

지도자 이창현은 새로운 꿈을 꾼다.

꽃을 다 피우지 못했던 선수 이요한은 올해 4월 이창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자신과 주변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그의 오랜 꿈이다.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긴 이창현의 도전이 궁금했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가 그를 만난 이유다.
우연으로 시작한 인연은 필연이 됐다. 이창현이 예정된 두 달보다 강구초에 더 머물렀던 이유는 정 때문이었다.
우연히 이뤄진 강구초와의 인연
2015년 성남 동계훈련 당시 안면 부상을 입고 팀을 나오게 된 이창현은 이듬해 태국으로 갔지만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지 못했다. 잦은 부상과 이로 인한 경기력 저하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이전에도 부상과 재활을 반복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선수는 경기에 뛰어야 사람들이 알잖아요. 부상 때문에 이런 모습을 많이 못 보여줬더니 사람들이 ‘왜 경기에 안 나와?’라고 자꾸 물어보더라고요. 제게는 너무나 스트레스였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간 프로 생활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의욕마저 떨어졌다. “2014년 결혼한 아내(아나운서 김미소 씨)에게 그만하고 싶다고 얘기했었어요. 아내는 아들에게 아빠가 축구하는 모습을 더 보여주길 원했죠. 하지만 제가 자신이 없더라고요. 자꾸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바에는 다 내려놓고 옛날부터 꿈이었던 지도자의 길을 걷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내도 제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말하더라고요.”

선수 생활을 완전 정리한 뒤, 이창현은 가족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떠나려 했다. 6개월 정도 머물면서 축구 연수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방향이 바뀌었다. “저랑 친한 형님인 강구초 최호관 감독과 영덕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감독님이 두 달 정도만 강구초에서 재능기부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은퇴 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자 우울증까지 찾아올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이창현은 최호관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때가 3월 말이었다. “두 달 정도니 부담 없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강구초에 간 이창현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지도자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작이 초등학교일 줄은 몰랐어요. 사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부터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꿈이었던 지도자 생활을 위해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이어 B급 지도자 강습회에서 수석합격까지 했다. 자신이 있었지만 처음은 물론 쉽지 않았다. 집이 있는 용인과 강구초가 있는 영덕 간의 거리는 약 300킬로미터였다. 게다가 이창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코치는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초반에는 ‘지도자 하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수 시절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몇 배는 더 많았어요. 선수 시절에는 내 할 일만 하면 되지만 지도자는 그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큼 학부모들과의 일도 중요했고, 학교 일도 해야 하니까요.”

스트레스를 잊게 해준 건 ‘정’이었다. “처음에는 ‘놀다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강구초에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다 보니 정이라는 게 생기더라고요. 저에게는 첫 제자들이잖아요. 나와 인연이 된 만큼 이 아이들이 밖에서 좋은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 같은 게 생겼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영덕에 내려가는 게 즐거워지더라고요.”
강구초는 최근 화랑대기 U-12 부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초등리그 경북권역에서 무패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순수함에 사로잡히다
그렇게 정이 쌓이다 보니 두 달이 훌쩍 넘어갔다. “‘내가 여기에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왔는데, 와서 보니 아이들이 정말 순수한 거예요. 축구를 정말 사랑하고 열심히 해요. 열정도 있죠.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나 봐요.” 이창현은 아이들과 금방 한 마음이 됐다. “저희는 합숙 생활을 해요. 그래서인지 제 일은 사실상 ‘육아 반, 지도자 반’이라고 해도 무방하죠(웃음). 축구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자는 일까지 세세한 부분을 신경써야하니까요. 같이 지내다보니 제가 어렸을 때 합숙했던 시절도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학부모들의 믿음도 이창현에게는 큰 힘이 됐다. “요즘 육성 시스템은 저희 때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도자가 우선이 아닌 학부모, 아이들이 우선인 세상이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점점 주관적으로 변해가는 거예요. 팀플레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죠. 그러나 강구초는 학부모들이 지도자를 믿는 문화예요. 지도자를 존중하고 신뢰하죠. 전적으로 맡겨주시고요. 이런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강구초의 일원으로 녹아든 이창현에게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화답했다. “장난삼아 두 달 있다가 갈 거라고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편지를 써 왔더라고요. 처음 있는 일이래요.” 아이들은 어느새 이창현을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구초 아이들은 저의 제스처 하나하나에 탄성을 보내고, 신기해하죠. 그런 모습이 너무 순수해요. 도시 아이들과는 다른 면이겠죠.”

잊지 못할 추억도 있다. “팀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최호관 감독님이 트로트를 틀어놓는데, 세상에 그걸 정말 잘 따라 부르더라고요(웃음). 처음 봤어요. 오히려 가요를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 없을 때 걸그룹 노래를 틀어놓는데, 그거는 그거대로 또 난리가 납니다. 아이들에게 저는 신세대 선생님이라는 이미지가 있나 봐요.”

‘정’이 가져다 준 힘일까? 강구초는 지난 8월 경주에서 열린 2017 화랑대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U-12부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 최근 초등리그 경북 권역에서 8승 1무 무패로 1위를 확정하며 왕중왕전에 진출했다. 이창현은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다. “화랑대기를 준우승으로 끝낸 뒤 정말 많이 울었어요. 아이들도 많이 울었죠.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지도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저는 오래 전부터 지도자를 목표로 했지만, 지금 이 나이 때 이런 감정을 느낄 거라는 생각은 안했거든요. 생각보다 일찍 경험해본 것 같아요. 그래서 강구초에서의 생활이 정말 고마워요.” 이창현은 당초 계획과 달리 강구초 아이들과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현은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일지를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화려한 지도자 대신 인정받는 지도자
이창현의 강구초 생활은 성실과 꼼꼼함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의 보물 1호인 훈련일지를 적극 활용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때부터 메모하는 게 습관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지를 꾸준히 썼죠. 초, 중, 고, 프로 생활 동안 하루도 안 빠뜨렸어요. 그렇게 쌓아 온 제 지식과 여러 감독님들로부터 배웠던 점들, 창의적으로 생각한 부분까지 더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게 처음이었기에 이창현은 프로에서 했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보통 훈련 시간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예요. 그런데 욕심이 생기다 보니 훈련 시간도 조금씩 늘어갔죠. 학부모님들도 이해해주시고 기다려주셨어요. 아이들도 잘 따라왔고요. 수도권에는 개인 레슨 문화가 많이 발달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개인 레슨이 없어요. 저한테 배우는 게 전부예요. 전술 이해도를 키우기 위해 저녁에는 이론 미팅도 했죠. 학부모들에게 비디오로 경기 장면을 찍으라고 하고, 그걸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부족한 점을 이해시키려고도 했고요.”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창현은 자신만의 지도 철학을 확고히 할 생각이다. “프로 생활하면서 김학범 감독님, 장외룡 감독님, 최강희 감독님, 정해성 감독님 등 여러 지도자들을 만났잖아요. 그 분들의 장단점도 메모해놨죠. 그걸 가지고 공부하고 있어요. 거기에 제 경험을 더해서 저만의 지도 철학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강구초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펼쳐보고 싶다는 계획도 이야기했다. “프로 유스팀 관계자와 얘기 중이에요.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느 팀에 갈지는 말씀 못 드리지만 그 쪽에서도 저에 대해 좋게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잘 준비되어 있는 모습에 놀랐다고 하셨어요. 제가 놀지만은 않았구나 싶어요(웃음).”

선수 생활의 끝자락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겪었던 이창현은 이제 외롭지 않다. 꿈과 희망을 찾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최호관 감독님이 ‘너는 그냥 딱 지도자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두 달 정도만 부탁한 건데 이렇게까지 잘해줄 지는 몰랐대요.” 다 피지 못한 꽃이었기에 앞으로 시작할 지도자 생활에 대한 애착이 크다. “나와 함께하는 선수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죠.”

이창현은 분명한 목소리로 꿈을 이야기했다. “화려한 지도자는 바라지 않아요. 제 꿈은 그저 제가 가르쳤던 선수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되는 거예요. 내 선수들, 내 사람들이 저를 좋은 지도자로 인정해준다면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거예요.” 이창현이 열어갈 지도자 인생의 다음 페이지는 무슨 색일지 궁금해졌다.

성남=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이창현 제공
화려한 지도자보다는 선수들로부터 인정 받는 지도자, 이창현은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걷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