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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소년 축구의 방향을 묻다-강압적 지도, 이제는 없나

등록일 : 2017.11.20 조회수 : 4926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이 향상되면서 축구계에서도 서로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기사에 실린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한국스포츠는 오랜 시간 폭력과 폭언, 강압적 지도 속에 길들여져 왔다. 축구도 다르지 않다. 다행인 것은 조금씩이나마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의식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빠따(배트의 시쳇말)가 약’이라는 말은 점점 더 구시대적 농담이 될 것이다. 2017년 축구장의 풍경은 어떨까?

- 서로의 감시자가 되다
“축구부 감독? 욕을 입에 달고 살지!”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의 중등 학원팀 관계자가 이상할 것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여전히 폭언과 욕설을 사용해 선수들을 지도하는 축구 지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령대를 막론하고 축구 경기가 열리는 현장을 다니다보면, 지켜보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로 선수들을 마구 다그치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대한축구협회가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리스펙트(Respect) 캠페인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일어나는 폭력, 폭언과 비신사적인 행위를 방지하고 선수, 지도자, 심판, 관중이 서로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두가 그 당위성은 알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습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유소년 축구에 몸담아온 한 지도자는 “욕설, 구타 등 폭력적인 방법을 쓰는 지도자들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줄었다. 물론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하는 지도자가 몰지각한 것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고 말했다.

지도자 스스로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 향상이 그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식으로 선수들을 대하면 큰일이 난다’,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구성원들끼리 서로의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한 중등 학원팀 지도자는 “경기 때마다 스무 명 남짓의 학부모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감시자들로 인한 강제적 변화가 지도자 스스로의 인권의식 체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의 시선이나 자신에게 다가올 불이익이 두려워 갖는 변화보다 진정한 의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한 지도자는 “지도자 강습회나 워크샵을 통해 인권교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교육들이 진행된다. 하지만 일부 지도자들은 이런 교육의 필요성을 등한시하거나 귀찮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지도자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압적 지도를 낳는 성적 중심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기사에 실린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 강압적 지도, 근본 원인은 성적 중심주의
유소년 지도자들은 2017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강압적 지도의 근본 원인이 성적 중심주의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경기에서 승리하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축구를 하려다보니 지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 프로 산하 팀 지도자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면 강압적 지도가 이뤄진다. 강압적 지도는 쉽게 말해 선수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빨리 이해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유소년 때부터 선수든, 지도자든 성적을 내야만 하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고 강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주입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햇다.

그는 이어 “좋은 성적을 위한 효율성만을 강조하다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각각의 나이 대에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며 축구를 배워야 하는데, 그 과정을 무시하고 어릴 때부터 성인과 같은 축구를 한다.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들이 유소년 프로그램을 만들어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현장 지도자들 역시 각 연령별로 어떤 훈련과 코칭방법이 필요한 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할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한 지도자는 “현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나뉘어져 경쟁하는 구조 하에서는 성적과 진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히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위주의 축구를 하게 된다. 각각의 선수들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보다 한 해 한 해의 경쟁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연령대를 세분화해서 각각의 수준에 맞는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돈, 인력, 구성원의 합의 등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학년별로 나눠 경기를 하려면 이들이 뛸 수 있는 운동장과 대회 개최 비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돼 학년별 경기를 하더라도 학교와 클럽, 수도권과 지방팀의 전력차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을 조화롭게 묶어내는 것도 과제다.

결국 강압적 지도를 낳는 성적 중심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은 뚝딱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더불어 개개인의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과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겐 지시 대신 칭찬이 필요하다. 개성넘치는 선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칭찬은 중요하다. (기사에 실린 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 아이들에겐 지시 대신 칭찬이 필요하다
좋은 성적만을 바라보고 하는 강압적이고 일률적인 축구는 몰개성적인 선수를 낳는다.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창의성 부족’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한 초등팀 지도자는 “한국축구의 문제점은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일시적으로 좋다는 여겨지는 축구를 맹목적으로 흉내만 내는 것이다. 스페인의 경우를 보면 바르셀로나식 축구와 마드리드식 축구가 다르다. 각 팀의 철학과 색깔이 묻어나는 것이다. 한국축구는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모두 이기기만을 위한 축구를 하기 때문에 개성이 없다”고 말했다.

백승호, 이승우, 이강인 등 일찍이 유럽 선진축구를 접한 선수들의 강점에 때해 이야기할 때면 많은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훈련에서나 실전에서나 ‘주눅 들지 않는다’는 점을 꼽는다. 바꿔 말하면 한국 선수들은 보통 잘 ‘주눅 든다’는 것이다. 한국 U-18 대표팀의 정정용 감독은 “유럽에서는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이다. 경기 자체를 즐긴다. 그런 점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몸에 녹아들다보니 실전에서도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소년 시절 강압적인 지도를 받게 되면 처음 만난 지도자의 축구 스타일에 따라 플레이가 고착화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한 지도자는 “축구는 전술 트렌드가 계속해서 바뀐다. 유소년 시절부터 특정 스타일의 축구를 주입식으로 배우다보면 성인이 된 후에 새로운 축구를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실시한 초등학교 8인제 시범경기에서 지도자들이 경기 도중에 지시하는 것을 자제시키고 칭찬과 격려 위주로 지도할 것을 주문했다. 협회는 이러한 방침을 주말 리그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유소년 지도자들은 “강압적 지도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유소년 축구의 가치와 철학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유소년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즐기는 축구 문화’의 정착이라면 그에 맞는 제도적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11월호 ‘CHECKPOIN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