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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소년 축구의 방향을 묻다-유소년 해외 진출의 양면성

등록일 : 2017.10.23 조회수 : 6034
해외 진출을 향한 유소년 선수들의 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가 유럽 무대를 주름잡던 시절, 많은 유소년 선수들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유소년 선수가 유럽에서 박지성, 이영표처럼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과 비슷하다. 실패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실패 후 돌아와서 적응에 실패한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 그들은 왜 해외로 가려하나?
성공의 기준은 각자마다 다르다. 한국 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서 활약하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박지성(은퇴)이나 손흥민(토트넘), 기성용(스완지 시티)처럼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최근 들어 유소년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전자보다는 후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기욱(AFC 투비즈), 박용우(울산 현대) 등을 관리하는 갤럭시아 SM 강성주 에이전트는 “유소년 선수의 해외 진출을 수치로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 유학, 연수 등 다양한 사례가 있고, FIFA의 유소년 해외 이적 금지 조항 등 변수가 많기 때문”이라면서도 “과거 FC바르셀로나 듀오로 이름을 알렸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백승호(CF 페랄라다-지로나B) 때문에 유소년 선수들 사이에서 스페인 축구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한인 접근성이 높은 독일 쪽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국내에서 유럽 축구를 TV나 인터넷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유소년 선수들의 해외를 향한 꿈을 키우는 데 크게 일조했다. 장훈고 졸업 후 스웨덴 리그에서 5년을 활약했던 인천유나이티드 문선민은 “어렸을 때 유럽에 나가서 외국 선수들과 경기를 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TV로 박지성, 이청용 등 유명한 선수들을 보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경희대 재학 중 스페인에 진출했던 김해시청 지언학도 “어렸을 때 TV에서 유럽 축구를 접하고,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서 해외 진출 꿈을 키웠다”고 이야기했다.

단순히 해외 생활에 대한 로망으로만 나가는 건 아니다. JSUN FC U-18팀 장민석 감독은 “한국에서 이렇다 할 부름을 못 받았거나, 한국이 마음에 안 들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게 되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돈이 들어가는데, 비싸게 돈을 내고도 경기를 못 뛰는 경우가 많다. 경쟁이 치열하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내고 해외 축구 유학을 떠나서 외국어라도 배우겠다는 생각을 가진 학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해외 생활은 여러 변수와의 싸움이다.
- 해외 생활, 여러 변수와의 싸움
해외에서 뛰고 싶다는 유소년 선수들의 간절한 마음을 막을 수는 없다. 한국보다 인프라가 좋은 유럽 축구를 경험하는 건 분명 한국축구의 큰 이득이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나갔지만 한국보다 더 냉혹한 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강성주 에이전트는 “학부모들과 유소년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의 성공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선진축구 시스템과 인프라를 기대하면서 갔지만, 언어적인 문제나 인종 차별 등에 부딪혀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언어와 생활에 적응했다 하더라도, 전혀 생각지 못한 다른 변수가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강성주 에이전트는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독일 명문팀 샬케 04 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합격 통지서를 받은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구단에서 ‘숙박, 식사 등 기본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지만 체류 비자는 선수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에 이 선수는 2년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야 했다.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그야말로 붕 떠버렸다. 심지어 이 선수는 한국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온 상태였다. 다행히 기량이 워낙 좋은 선수라 최근 스페인 헤타페와 계약에 성공했다. 특이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팔렌시아 지역팀에서 유학한 뒤 스페인 4부리그 알코르콘 B팀에서 뛰었던 지언학은 감독이 바뀌면서 경쟁에서 밀리게 된 케이스다. 그는 “알코르콘 B팀과 계약에 체결한 후 한국으로 한 달 휴가를 다녀온 사이 감독이 바뀌었다. 새로운 감독님이 자기가 아는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왔다. 새 감독이 성적을 워낙 잘 내다보니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고, 시즌 절반 정도만 출전했다. 차별도 많이 받았다. 막바지에는 결국 배제됐다”고 말했다.

해외 정착해 실패해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다. 울산 현대 U-18팀 현대고를 관리하는 울산 현대 강화부 김광수 과장은 “유스 출신 선수들은 해외에서 실패하고 돌아와도 소속팀에서 받아줄 거라는 안전장치가 있다고 믿는다. 또 에이전트들은 선수가 아마추어일 때 이적시키는 게 이적료가 들지 않고 훈련보상금만 지급하면 되기에 영입 제안이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K리그 입단을 하지 않고 가는 선수들은 돌아와서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알다시피 K리그는 쉬운 리그가 아니고 적응하기 힘든 리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마추어인 상태에서 바로 해외에 가게 되면 프로 선수로서 몸 관리 하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부상이나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고 밝혔다.

- 유망주 자랄 국내 환경이 필요하다
높은 실패 확률에도 불구하고 유망주들이 해외로 나가려는 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시스템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유럽 빅리그로 나가기 위해 K리그를 거치지 않는다는 건 한국 축구가 지닌 분명한 숙제다. 강성주 에이전트는 “유럽 진출만큼 일본으로의 진출 희망도 최근 들어 높아지고 있다. 선진 축구를 배우기 위해 유럽에 가겠다면 막을 수 없지만, 한국 축구 유망주 자원을 일본에 뺏기는 현상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큰 원인은 계약 조건이다. K리그 신인 선수는 최고 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3,600만 원에 5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프로에 정착했다 하더라도 유럽 진출 희망 시 선수가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는 애로사항도 있다. 프로 산하 유스팀 출신이 우선 지명으로 입단할 경우 계약 조건은 정해져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해외 진출은 양날의 검이다.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프로에 입단한다 하더라도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프로 데뷔 첫 해에 주전으로 자리 잡은 전북 현대 김민재는 특수한 경우다. 신인이 주전으로 올라설 확률은 극히 드물다. 지난 5월에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서 한국 U-20 대표팀은 한찬희(전남 드래곤즈)를 제외한 프로팀 소속 선수들이 소속팀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당시 U-20 대표팀을 이끌었던 신태용 감독도 이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아마추어 축구로 시선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성적이 최우선 순위인 한국 아마추어 축구의 특성상 저학년 선수들은 고학년 선수에 출전 경쟁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이는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연결된다.

장민석 감독은 “국내에 대학팀들이 정말 많다. 최근 들어 사이버대 등 여러 형태의 대학 축구부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름 없는 대학 축구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경기에 뛸 수 있을지 미지수고, 더 나아가 취업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학비 등 돈은 1년에 2,000만 원씩 들어간다. 결정적으로 27세~28세가 되면 군대를 가야 한다. 20대 초반에 경험을 쌓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서른을 맞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도전해라, 대신 마음은 단단히 먹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진출은 여전히 유소년 선수들에게 매력적이다. 단점만큼 장점도 많다. 수준 높은 축구와 문화를 경험한다는 건 선수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기회를 잡는다면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 다만 여러 가지 변수와 어려움을 이겨낼 의지를 갖춰야 한다. 의지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문선민은 “한국에서 생활했던 것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지내야 한다. 친구들과 활발하게 지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텃세라는 건 존재한다. 적극적인 성격이 중요하다. 또 해외팀에서 지낼 경우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선수로서 성장할 수도, 도태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언학은 “해외에 나가게 되면 무엇보다 언어적인 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도 눈에 많이 띌 것이다. 나 역시도 그 점이 정말 스트레스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동경해 무작정 나가게 되면 분명 어려움이 더 클 것이다. 정말 해외로 나가고 싶다면 주위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게 좋다. 또 한국에서 인정받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권창훈(디종)이나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처럼 K리그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뒤 정식으로 오퍼를 받고 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강성주 에이전트도 “어린 나이에 해외로 진출해 성공적으로 안착한 손흥민, 기성용의 공통점은 언어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준비는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로 나갔을 때 스타플레이어가 됐다는 자만심은 버려야 한다. 경기장 안에서 신뢰감을 쌓기 전에 사생활에서부터 친분을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축구 유망주들이 해외로 나가는 대신 한국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강성주 에이전트는 “현재 K리그에서 23세 의무 출전 규정(K리그 챌린지는 22세 이하)이 있지만 한 자리 뿐이다. 어린 선수들의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R리그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프로 유스 시스템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단순한 리저브 리그가 아닌, R리그 팀이 하위리그에 참가하는 스플릿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민석 감독은 “지도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유소년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들도 해외 연수 등의 기회로 기량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지도자들도 좋아야 한국에서 좋은 축구 선수가 나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10월호 ‘CHECKPOINT‘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