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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Footbal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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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이 축구하는 모습_1906

대한축구협회는 한국의 축구 행정을 총괄하는 유일한 기구로서, 축구를 대중속에 널리 보급시켜 국민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고, 우수 선수 및 지도자 양성, 축구를 통한 국위 선양을 위해 만들어졌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1882년 제물포(인천)에 상륙한 영국 해군 군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 근대 축구가 전해졌다.
이 무렵 전국 각지에 근대식 학교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들 학교의 교사, 학생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축구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축구인 조직은 1928년 5월 22일 창립한 <조선심판협회>로 대한축구협회의 전신에 해당한다.
회장은 신기준 씨가 맡았다.
5년 후인 1933년 9월 19일 <조선축구협회>가 조선심판협회를 계승하여 첫 출범했으며, 박승빈 씨가 제 1대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조선축구협회는 각종 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2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일본의 침략정책에 의해 국내 모든 체육단체와 함께 1938년 강제로 해산되고 말았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1948) 대한축구협회 전경

1945년 해방이 되자 <조선축구협회>가 다시 복원되었고,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4일 오늘날의 <대한축구협회>로 명칭이 확정되었다.
1948년 5월 21일 FIFA<국제축구연맹>에 정식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종목에 국가대표팀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어 1954년 5월 8일 AFC(아시아 축구연맹)에도 가입하였고, 1954년 아시아 대표로 월드컵 본선에 첫 출전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한국 축구는 1960년대를 거치며 아시아의 강호로 떠올랐고, 1970년대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과 축구에 열정을 가진 축구협회장들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축구 열풍에 힘입어 1983년에는 프로리그가 출범하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 까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정몽준 회장은 의욕적인 활동으로 축구 발전을 앞당겼으며, 1994년부터 2010년까지 FIFA 부회장으로서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축구계의 끊임없는 노력은 마침내 1996년 5월 2002 FIFA 월드컵의 한국, 일본 공동 유치 결정으로 활짝 열매를 맺었다.

대한축구협회는 1999년 5월 온 축구인의 염원을 모아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축구회관을 완공했고,
2001년 11월에는 국가대표팀 전용 트레이닝 센터인 파주 NFC의 건립으로 선진축구행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드디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4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함으로써 한국 축구 120년 역사상 최대의 기쁨을 국민에게 선사했다.

대한체육회에 가맹한 국내 체육단체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축구협회는 보다 건전하고 책임감 있는 스포츠 행정 실현을 위해 2005년 11월 사단법인으로 전환하였다. 한국 축구가 오랫동안 축구 강국으로서 세계에 이름을 드높이고, 축구가 한국의 국기(國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축구 발전을 이루려는 역대 한국축구협회장들의 열정과 축구인들의 노력, 그리고 4천만 국민의 뜨거운 축구 사랑이었다.